싱어는 인간 평등의 토대가 되는 윤리 원리가 동물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며, 한편으로 동물권을 보장하는 것이 인권 보장에
있어서 타당성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싱어는
가장 대표적인 동물 학대 사례로 꼽을 수 있는 동물 실험과 공장식 축산에 관한 면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두 사례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인지
비판한다. 이후 동물 해방을 위해 현대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가장 대표적으로 채식주의를 꼽고, 오늘날
종차별주의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는 개별 행동에 달렸다면서 개개인의 변화를 촉구하며 글을 끝낸다. 피터 싱어가 특별히 주목받은 이유는 동물을 향한 인간의 시혜적 동정심이 아닌 견고한 윤리적 체계를 바탕으로
동물 해방을 논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동물 학대 사례가
동물 실험과 육식에 치우친 설명이 주였다는 점이었다. 저자의
말에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만 언급하고 반려동물이 동물 학대의 일종이 될 수 있는지는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식물권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가?’에서 언급하는가 했지만
식물의 고통에 관한 질문이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에 대한 공격이 된다는 내용이 주여서 아쉬웠다. 물론 동물 실험과 공장식 축산이 아직도 동물 학대의 가장 대표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이 책이 1975년에 쓰인 것을 고려했을 때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2009년 개정판에서 동물을 해치는 것과 함께
사랑하며 곁에 두려고 하는 행위도 동물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관점도 추가해 더욱 폭넓게 다뤘다면 「동물 해방」이라는 제목을 한층 탄탄하게 지지하는
기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기본으로, 반려동물 이슈까지 다룬 책을 추가로 찾아 읽을 예정이다.
동물 해방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피터 싱어가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천부인권의 원리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싱어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해당 생물이 고통을 느낀다면, 즉 쾌고 감수 능력(limit of
sentience)이 있다면, 그
생물의 이익과 인간의 이익이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그 존재의 이익이고, 고통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수반된다. 예를 들어 길가의 돌은 쾌고 감수 능력이 없고
따라서 돌을 마구 찬다고 해서 돌의 이익을 침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쥐는 쾌고 감수 능력이 있고 그럼으로 길가의 쥐를 마구 차는 행위는 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쾌고 감수 능력 외의 지능, 합리성, 언어사용능력 등등은 그 생물의 이익에 관심을 가질지 여부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만약 이 같은 기준이 채택된다면 우리가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도덕적 입장과 상반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싱어는 주장한다.
인간은 현재 모든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을 따르고 있는데, 쾌고 감수 능력이 아닌 다른 기준을 내세웠을 경우 어떤 특징을 가진 인간집단을 차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쾌고 감수 능력이라는 평등의 기준을 인간이
다른 종과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적이긴 하지만, 천부인권을 바탕으로 한 싱어의 동물권 주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간과 동물이 차별받지 않아야 함의 기준인 '쾌고 감수 능력'이라는 동일한 특징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능력’을 가진 인간을 사회나 국가 안에서 늘 ‘자아’로 대우하고, 그렇지
않은 존재, 즉 동물이나 식물이 늘 ‘타자’로서 취급하는 것은 인간 평등 논리 체계와 모순된다. 특별히 악독하고 잔인한 인간이 아니라도 자신이
속한 종의 이익이 다른 종의 더욱 커다란 이익에 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동물 실험을 자행하거나 육식을 하는 인간은 모두 종차별주의자이다.
인권에 관련된 이슈는 비교적 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어느 인간집단이 자신의 타당한 인권과 그에 따른 마땅한 이익을
요구한다면 빼앗긴 권리의 쟁취이든, 부정하게 가지고 있던 권력을 놓는 과정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다른 인간집단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즉, 인권에 대한 논의의 영향은 어떤 인간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동물은 오랫동안 인간의 피해 집단이 되었음에도 인간에
의해 타자화 되어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수단’ 혹은 ‘물건’으로 취급되어왔다. 동물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능력이 (최소한 지금의 인간중심적 지구에서는) 없기 때문에 동물권 운동은 인권 운동보다도 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은 동물권에 있어서 가해자집단으로써 지금껏
자신과 다른 종과의 관계에 대한 선입견에 도전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서서히 동물권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도 한국 사회가 동물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를 사회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피터 싱어는 시대가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 전제에 대하여 초지일관 비판적이고 조심스럽게 검토하는 것이
철학의 사명이며 이로 인해 철학이 가치 있는 활동으로 자리매김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 너무나 당연시되고 심지어 칭송 받는 한국 사회의 육식이 이대로 괜찮은지 돌아보는 과정은 매우 가치 있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 최소한
쾌고 감수 능력이 있는 동물이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이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념만큼 자명하다. 인간이 먹이 사슬 꼭대기에 서서 특수한 지적 능력과 공감 능력을 근거로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고, 다시 이 능력을 이용하여 다른 종을 학대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며
인간의 고귀한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