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다.”
맞는 말이다. 엄마도 십대와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빛나는 이십대를 지내며, 누군가에게 챙김 받는 게 더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딸인 사람과 함께 사는 그 모든 순간이 낯설고, 미숙하고,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엄마가 딸에게 살아오며 자신이 배운 것들을 전해주고자 지은 책이다. 정신과 의사인 엄마가 그동안 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깨달은 인생의 교훈들, 자신이 느낀 점들이 다정히 담겨있다.
그 중 가장 나에게 와 닿은 것은 ‘완벽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완벽주의자가 실수를 하기 싫어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시작 자체를 미루다가 결국엔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아이러니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딱 나의 모습이었다. 늘 나 자신에게 엄격했다. 내가 하는 선택이 옳은 길이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미완성된,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졌다. 나의 것, 내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실수하는 것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삽질’이라는 것을 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키는 공부만 12년 넘게 해온 내가, 이제 겨우 대학교라는 넓은 곳에서 1년 지낸 내가 ‘삽질’하지 않고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경험을 쌓을 수 있을까. 이것도 하나의 과정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부분이 와 닿았다. 나는 늘 사랑 받기 위해 애썼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를 향한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너무 좋았고, 혹여나 누군가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으면 미친 듯이 불안해했다. 그 사람 주변을 알짱거리며, 반응도 시원찮은 그 앞에서 웃고, 맞장구치며 재롱을 피웠다. 나 좀 사랑해달라고,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돌아오는 건 항상 무관심에 가까운 무심함이었다. 그렇게 또 혼자 상처 받고. 도대체 언제쯤 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했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전혀 안 괜찮았다. 스무 살이 되어도, 성인이 된지 이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힘들 것 없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곁에 두렴. 말이 쉽다는 건 알지만 공유해온 시간과 추억이 아깝다고 너 자신을 갉아 먹지 않아야 해.’
이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쩜 이렇게 다정히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생기는 소심함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것이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조금 더 담백해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소홀하기 싫은 상대에게 소홀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그렇지 않은 상대는 ‘소홀’하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것들에게 쉽사리 가벼워진다. 뜨거운 것들만이 식을 수 있다. 필연적인 소홀함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있다. 내용도 좋았지만 어머니가 딸아이에게 사랑을 담아 이야기를 건넨다는 형식 자체가 다정해서 다 읽고서도 반성하는 마음보다 따뜻함을 더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