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1열 프로그램을 보면서 변영주 감독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감독님 특유의 가치관과 화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팬심으로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변감독님께서 추천하신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설과 시는 좋아하지만 에세이하고는 그다지 안 친했던 터라 조금 주저하긴 했다. 그래도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음먹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내 용기에 잘 보답하진 못했다. 중요한 가치를 말하고 있는건 알겠지만, 그 전달방식이 너무 난해했고 독자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언어를 해석하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애를 써야만 했다. 앞서 말하고 있던 것의 결론도 제대로 짚지 않은 상태로 넘어가버렸고, 문장 구조도 너무 어려워 뭐가 주어고 술어인지 조차도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붙인 인덱스는 많았다. 내용 면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많았고, 간혹가다 신선하면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표현들이 있었다.
작가는 외면하고 싶은 쓰디쓴 현실을 가차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 편이다. 책 중반부에 나오는 말 중에 인상깊어서 적어놓은 구절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되는 생각은 부정적인 현상에서조차 가치있고 긍정할만한 것을 분별하고 구해내는 것이지, 부정적인 것을 두눈 딱 감고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송곳처럼 날카롭고 깨어있는 말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기에 행복이란 말을 이곳저곳에서 쉴새없이 내뱉으며, 심지어는 그 말에 편승하여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행복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삶에서 소소히 누릴수 있는 것이지, 아픔을 모른체하기 위한 도구가 되면 안되는 것인데 말이다. 특히 공동체의 문제일 경우에 이러한 덮어놓기식 태도는 큰 아픔이 된다. 이처럼 작가는 내가 평소에 갖고있던 구름같은 생각을 가끔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후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책을 이어나간다. 작가가 조각가 자코메티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딱 한번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우린 언제나 영원히 살고, 영원히 젊음을 취할 듯이 행동하곤 한다. 언젠간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인생을 더 진지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여기에서 꼬리를 문 생각이 있다. 한번 죽고나서도 특유의 관성과 타성으로 또 한번 인생을 낭비하는 자는 없을까. 욕망이 이성을 지배해 자기관리가 안되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두 번의 죽음이 과연 의미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한 특별한 기회를 자신의 밑거름을 삼는 다는 것 역시, 현명한 자들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책은 이렇듯 개인의 생각을 확장하고 오래 사색할 수 있는 생각거리들을 들고온다. 전체적으로 어려웠고, 횡설수설한 느낌이라 힘들었지만 다양한 책을 예시로 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또, 앞서 적었듯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구절들도 꽤 많았다. 책을 흥미가 아닌 끈기로 읽은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작가가 말하고 있는 주제 자체가 쉽지 않았기에 이 정도면 독자를 상당히 배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