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2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개강을 맞이하여 도서관에 사람이 가득하다.
방학동안의 정적이 그리울 새도 없이, 내가 아직 도서관에 있어도 되나 싶은 요란함이다. 신입생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이 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해야할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되는 때가 성큼 다가왔다고 공기 너머로 전달된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 또한 아마 내가 그 순번을 넘겨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가 상당할 것이다. '라틴어 수업'. Hot book 위치에 그리 오래 있었고 중앙도서관에 5권이나 있었지만 도통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 오래된 언어를 다루는 책에 그 무슨 호기심이 닿아 이토록 많이들 읽는지. 그리곤 읽고 나서 왠지 마음에 먹먹함과 머리에 북적임이 차있는걸 보니, 이래서 다들 찾아 읽었구나 싶더라.
이번 담론은 잡다한 담화로 풀어가면 딱 맞지 싶다. 잡학론은 이상하니, '일상론'으로 말을 이어본다.
여태 산책을 좋아하는 이중에 악인은 보지 못했다. 앞서 몇번의 독서 후기에서 밝혔듯 묘한 학자들이 줄곧 산책을 사랑함을 밝혀 왔으니, 악인보다 현인이나 기인에 가까운이들이 산책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 이 책의 저자 또한 산책을 즐긴다고 밝혔다. 정확히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집 뒤에 있는 산을 오른다고 한다. 그 곳에서 산 내음을 맡으며 머리의 두통을 쫓아내고 긴 집필 작업의 피로를 씻어낸다 하니, 여간 선한 사람인 것이 아닐까.
우리 학교에도 그런 현인 및 기인을 위해 산뜻한 산책 길이 가까운 곳에 배치되어 있다. 가깝게는 저기 수선관위로 쭉 올라서서, 후문을 나서 우측으로 빠지면 와룡공원이 있다. 그 공원길 따라 쭉 가면 성곽을 따라 성북동이 내리보이니, 마음도 식히고 학업에 지친 머리를 비우기도 적절하다. 중간고사 기간 즈음에는 벚꽃도 그득히 펴서 여간 괜찮은 곳이 아닐까.
이 산책 이야기는 저자의 힘들었던 어머니와의 사별 일화와 엮여 나왔다. 그 표제어는,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의 입구에 이 문장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말인 즉슨,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으니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다.'로,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겸허한 울림이 있는 말이다. 마냥 네 죽음을 고민하라는 것이 아닌, 그 죽음의 이후에 어떤 향기를 남겨 타인에게 기억될까 저자는 고민해보라 말을 나눈다.
도서관이 분주하고 소란스러운게, 약간 어색하다. 방학 동안에 그렇게 고요한 장소였는데... 하다가 아차 싶었다.
사실 사람 많고 새내기들 그득하고 새 책도 성큼성큼 들어서고. 잘 나가는 책이 내가 빌려 읽기 힘들만큼 대출이 많이 되는 건 여느 후배들이 나보다 더 성실히 책을 찾아 읽고 있다는 것일텐데. 학번이나 학년의 무게는 애써 시선을 돌려오다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문장은 그 건네줌의 역학을 나에게 여실히 전달해주었다. 여태 잘 이용했으니 새로운 이들이 찾아오고 보다 잘 쓰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지. 이렇게 독서 일지를 꾸준히 쓰고 주변에 오거서 홍보와 산책 홍보를 너슨히 하면, 작게나마 이 학교에 나름의 향기를 남기고 갈 수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또 저자의 말이 이어진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학생에게 맞게 편집하거든 말이 이렇게 바뀔까, '원활한 학교 생활을 바라거든 졸업을 준비하라.' 이 문장을 몇년 전에 먼저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그 사이에 옛 현인들의 조언을 찾아볼 새도 없이 원활한 학교 생활은 나에게서 멀어져 가버렸다. 매우 아쉽게도 이 책은 2017년에 나온 책이고, 물론 라틴어 구문은 나에게서 원활한 학교 생활 만큼이나 멀었으니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부디 다음의 본 책의 독서가들이 새내기들이기를 바란다. 참고로 저 구문이 나온 페이지는 157쪽이니, 필히 해당 부분을 정독하고 곱씹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그 만남의 순간을 위해 다들 빠르게 정독하고 빠르게 반납하기를 작게 바래본다.
마냥 새내기들에게만 이 글을 할애하기는 아쉬운게, 이번 학기에도 슬슬 동기들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라. 취직한 이도 있고, 대학원 가서 이미 고생하는 이들도 있고. 혹은 병역 관련해서 아직도 고생하는 이들도 있고 제각기더라. 사실 이쯤되니 먼저 안부인사 묻기도, 답하기도 어렵다. 괜히 산책을 해야하는게 아니더라. 마음 복잡하고 신경쓸게 나날히 늘어가니, 저 48세의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저자도 산책을 줄곧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로마의 편지 인삿말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한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사실 편지 인삿말이 다 그렇더라. Dear라고 앞에 수식한들 잘 모르는 이를 정말 매번 친애하지는 않을 것이고, 한국식으로다가 날씨 곁들여 안부를 물은들 사실 그 부분은 빼고도 편지는 잘 읽힌다. 다만 당신이 잘 계신다면 좋은 일이라 먼저 겸허히 묻고, 다시 나는 잘 지낸다며 나에 대한 걱정을 줄여주는 저 문장은 여느 때보다 와닿는다. 사실 저 친구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중이겠지만, 굳이 그걸 세세히 짚어낼 필요는 없잖은가. 한창 졸업 전후의 고단할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전하고자 한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일상에서 글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리면, 어딘가 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너슨해진다.
글 틈틈히 나는 종교인의 향기와 어딘지 아버지 같은 분위기. 그리고 그 뒤에 이 책을 쓰기 위해 담겨진 무수한 경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아닐까. 글 만으로는 연세가 상당한 신학자가 연상되었지만, 생각보다 젊은 분이셔서 또 놀랐다.
그런 분의 강의와 개인 경험과 라틴어 문법이나 구문을 다룬 글에, 어떻게 글을 덧이을까 고민하다 작게 내 개인의 담론으로 말을 이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직접 이 책을 읽으며 말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게 보다 생생히 전달되지 않을까. 어딘가 마음 느슨히 풀고 싶을 때 읽어도 좋겠지만 역시 친애하는 새내기들에게 한아름 안겨다 주고 싶은 책이다. 직접 사서 건넬 역량이 아직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어서 반납해서 건네줘야지.
작게 한 마디만 덧붙여,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다.
라틴어 수업을 찾아, 대학 생활 찾아 헤매이기전에 작게 달 보고 소원 빌어보는 정도는 다들 괜찮지 않을까.
다들 복 가득히, 소원을 이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