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추천해 준 건 독서모임을 통해 책을 읽었다던 나의 예비한의사 친구였다. 이과인 친구가 이렇게 철학적인 측면도 함양하고 있다는 점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진짜 문과인 나도 철학을 읽어보자는 마음에 책을 사러 서점으로 갔지만, 서점에서 몇장 읽지 못하고 내려놓아버렸다. 아마도 그땐, 내가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나 보다. 아니, 내가 내 손으로 찾아간 책이 아니라 그랬었나보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2019년 1월 2일 첫 출근을 하게 된 내 직장은 험한 산길같았다. 인턴으로 입사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조차도 나에겐 곤욕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계속해서 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진지 하루만에 나는 "제발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외치고 싶어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향하고 있었다.
철학 책이 읽고싶었다. 철학이 필요했다. 몸이 지치자, 마음을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책을 들고 출근을 했다. 한 삼일 정도 그렇게 출퇴근 길에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푸념을 했고 친구는 ebook을 추천해주었다. 꽤 좋다며.
그렇게 읽게 된 내 첫 ebook이 바로 라틴어 수업이었다. 가볍게 읽을 철학책. 그리고 친구가 추천해 준 게 생각나 읽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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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2학기에 '라틴어로 말하면 뭐든 고상해 보인다'는 생각에 나도 우리학교에 있는 라틴어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장렬하게 F를 맞았다. 우리 학교의 라틴어 수업은 정말 라틴어 수업이었다. 문법을 외우는 중에 나는 라틴어에게 두손 두발을 다 들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라틴어 문법을 문법공부가 아닌척 하며 머리에 스윽 넣어주었다. 어쩌다보니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 문법이 머리에 들어와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교수님은 내게 힘을 주셨다. 속삭이듯, 어깨에 힘을 실어 주물러주시며. 나는 늘 나 자신을 미워했다. '왜 이것밖에 못하니', '이거 해놓고 지금 힘들다고 주저앉은거야?', '그만 투정부려'라며 내 자신에게 화를 내곤했다. 늘. 언제나. 나는 내 자신에게 부족한 아이였지 만족스러운 인간은 아니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진실로 가장 가엾은 인간이었나보다. 아니 아직도 그러하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가엾은 인간인지. 내가 나를 얼마나 학대하고 있었는지를.
<<<<타인보다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더 비난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을 칭찬하는 말은 쉽게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채찍만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최고의 천사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교수님은 내게, '잘 하고 있는 데 왜 그러니?'라고 묻고 계신 듯했다. 이제 그만 나를 칭찬해줄 때도 되었는데. 나는 내가 참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단점을 그 누구보다도 잘 보고, 계속,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끊임없이 열심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문뜩, 내가 남의 발걸음에 맞춰 걷지 못해 안달이나 보였다.
<<<<하늘의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나는 내 날갯짓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을까?...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진정한 공부를 하고 있긴 했던 것일까?...
이젠 정말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 최근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읽지 않던 책을 들게 된것도, 갑자기 철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된것도 아마 내가 많이 힘들고 지쳐서 보낸 마지막 구원의 손짓이었던 것 같다. 더 큰 공부를, 더 긴 학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을 좀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의미로 이런 기회를 주신게 아닐까. 신이라는 존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