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사회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사실 나는 회의적이기에 이 책에서 그리는 다양한 로봇 사회의 모습들을 보면서도 큰 기대가 생기거나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무엇이 바뀔지는 알겠으나, 이제껏 영화나 책에서 그려진 고도의 과학 기술 사회처럼 정말 오직 기계만으로 모두의 삶이 통합되고 유비쿼터스가 되는 사회가 쉽지 올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많은 매체들이 그런 사회의 이점보다는 감정이 메마른 과학 사회,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목적 전치의 상황을 보여주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그녀>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영화 <그녀>는 ‘로봇 시대, 인간의 일’에서기계에 의해 통제당하기보다는 기계와 공존하며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며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하지만 결국 그 따뜻함은 책의 제목인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잿빛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그녀>의 주인공이 알아야했던,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하는 로봇 시대의 인간의 일은 무엇인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사실 진부하지만 이에 반박할 수는 없다. 고도의 기술 사회에서 인간은 그 실존의 의미를 성찰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에 인문학적 연구를 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일들을 더 편리하고 빠르게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그 기계에게 단순히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상호작용하고 공존하며 살아갈 행동 주체로서의 미래 인간은 시대 흐름 속에서 구성된 존재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아무리 기계가 결정을 도와주고 일을 처리해준다고 해도, 우선 기계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과정에 있어서 인간이 선택지를 스스로 만들고 선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인간은 ‘비인간’들과 차별되는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성찰해야한다. 인간 실존에 대해 논의하는 실존주의 학파는 인간이 전쟁의 도구로써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퍼진 세계대전 시기에 나타났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마냥 장밋빛의 미래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이제 인간은 도구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구로 여기던 기계에 자신의 일을 대체당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2017년, 교양교육연구에서는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는 인간의 일 중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면서 가장 큰 변화이자 위기는 인간성의 상실과 인간 실존에 대한 회의감일 것이라 예견했다*. 현재 여러 학자들이 내놓은 미래에 사라질 직업, 미래에도 유망할 직업을 설명하는 보고들을 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과 전공 분야가 리스트에 포함되는 지 확인하는 것도 일종의 실존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일 것이다.
대체되는 인간의 일은 오직 직업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서는 기계가 더 이상 도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감정적 연대와 사랑의 영역까지도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비롯한 인간의 실존 이유를 스스로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 살아온 자취와 가치 판단, 인간만의 감성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 연구를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꾸준히 개발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 조현국,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대학교육의 변화와 교양교육의 과제」, 『교양교육연구』 제11권 제2호, 한국교양교육학회, 2017,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