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마귀들림 현상’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랑케는 경험/실증주의 역사학을 강조하며 “역사가는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한 채 역사를 서술해야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인 저자 미셸 드 세르토는 역사는 결코 확실한 법이 없으며 역사가의 주관성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이에 맞선다. 이러한 가운데 집필된 이 책은 ‘마귀들림 현상’을 주체가 아닌 타자라는 새로운 각도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역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역사는 역사가와 함께 움직인다.”라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과거의 어떤 자료를 읽어야 하는지를 미리 규정하는 역사가의 주관성에 따라 사료가 취사선택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가 다르게 서술된다고 말한다. 당시 신학이 지배했던 유럽종교 사회에서는 ‘마귀들림 사건’이 발생하자,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타자로 인식되어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록을 남긴 자의 주관성에서 역사의 불확실성이 드러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따라서 후대의 사람들은 역사의 주류에서 제외된 사실들을 알 방도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래서 저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역사가의 주관성 아래 은폐된 사실들을 밝히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연구하기 위해 이용된 1차 자료(당사자들의 육성, 공개적 사건에 따른 조서 등)와 가공된 2차 자료들(신문 기사 등)의 기록자가 대부분 시대의 주체인 성직자나 권력 계층(의사, 정치가)이거나 출판에 있어 그들의 검토를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모순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시대상 불가분의 사회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외로서 여겨지는 타자의 흔적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사회상을 추측하게 한다는 점에서 본 책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저자가 속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3가지 특징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미셸 드 세르토(1925-1986)는 프랑스의 역사가로서 소르본 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날학파의 방법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그의 성향은 내용의 구성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그는 아날학파의 제1세대인 블로흐와 페브르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제휴’라는 방법론적 시각을 계승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그가 파리프로이트 학교 세미나에 다수 참석하면서, 정신분석학의 깊은 연계를 통해 심성사(망딸리떼의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책 속에서 비가시적 연구 영역인 후각사가 제2장에서 나타나고, 제4장에서는 역사의 범위가 공간적으로 확장된다. 또한 잔 데장주에 대한 심층적 분석에 있어서도 정신분석학적 측면을 부각되는 것은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인식과 사유에 대한 지역적·공간적 배경이 보다 확장된 것을 방증한다. 둘째, 그는 일반 민중과 일상의 삶에 대한 역사 인식 문제 제기를 통해 집단의 역사를 보고자 했다. 연대기적 서술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에 있어,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여 다방면의 시각으로 보고자 했다. 사건의 성격상 성직자, 관료, 의사 등 엘리트 개인의 역사를 많이 다루는 결과를 낳긴 했으나, 잔 데장주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조명하는 등 수녀들의 미시적 시각을 그렸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셋째,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사실로 치부하기 보다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통찰을 얻고자 했다. 그는 루됭에 대한 인쇄물의 통계와 공간적 거리를 나타내는 지도는 역사 연구 계량화에 도움을 주는 도구들이다. 사회적 법칙 발견이라는 통찰을 얻기 위해, 그는 객관화를 돕는 도구 활용을 통해 역사에 접근했다. 이러한 접근은 랑케의 경험 실증주의학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며 역사에 대해 사유할 것을 주장한다. 이렇게 역사에 새롭게 접근하는 세르토의 방법은 그만의 독특한 역사적 사유로 이어지게 된다.
2. 타자의 형상들
1) 타자의 형상을 밝히기 위한 연구
세르토의 이러한 시도는 왕실과 국가 중심/엘리트를 다루는 주류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타자’에 대한 탐구를 통한 역사관의 성립은 당시 독특한 시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타자의 형상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 자신의 종교 철학에 대한 신념뿐만 아니라, 사회·정치·문화적 측면의 다양한 고문헌들을 꼼꼼하게 분석함으로써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자 노력했다. 역사 서술에 있어 실증적인 분석과 더불어 이론적 근거로 삼았던 ‘프로이트로의 귀환’, ‘피억압자로의 귀환’은 과거 거시적으로 접근했던 역사학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세르토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타자의 무엇을 연구하고자 했을까?
세르토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학자였다. 따라서 “누가, 누구에게 마귀 들렸는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마귀들림에는 ‘진실한’ 역사 설명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기존 지식이 정상이라고 규정한 것을 전복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632년 9월 말, 루됭에서 마귀들림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종교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해 프랑스의 변화·격동의 시기였다. 가톨릭 사제 위르벵 그랑디에는 마법사(마법을 건 주술사)로 지목받아 기소되었으며, 예수회에서는 장조제프 쉬랭 신부를 파견하여 수녀 잔 데장주를 치료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잔 데장주가 치유되고 쉬랭이 무너져 버리게 된다. 이후 잔 데장주는 ‘기적을 입은 성체’로 추앙받게 되는데 이는 그녀가 새로운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쌍방향적으로 주체와 타자가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절대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랑케는 역사가 신의 의지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세르토는 인간의 정신적인 태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역사를 재편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저자는 인간 중심의 역사를 연구하려는 태도를 지녔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을 행위의 주체로 삼아 분석하며 사회의 역사를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로바드르몽, 의사들, 위르벵 그랑디에, 쉬랭, 잔 데장주 등 각 등장인물을 자세히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마귀들림’이라는 사건을 전체적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비교대상자가 비교주체와 상호작용을 통해 입장이 바뀌기도 하고, 종교 지식의 대상이 종교 지식 형성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주체뿐만 아니라 외부로 배제되거나 추방된 타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임으로써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역사를 일깨우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의 주장에는 타자와 주체 그리고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해보려는 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의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적 능동성에 의해 정립되며 재해석의 여지는 넓어지게 된다. 결국, 새로운 역사관의 정립은 역사적 사유의 범위를 넓혀주게 되는 것이다.
2) 타자와 희생양 메커니즘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사회의 축적된 불만과 저항을 희생양을 통해 대리 해소함과 동시에 안정을 느끼게 하는 사회적 배제·통합 기제를 의미한다. 희생양으로 지목된 이들이 순순히 자백하지 않을 경우에는 혹독한 심문이 이어졌으며, 이러한 양상은 마녀사건과 ‘마귀 들림’ 사건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마귀 들린 수녀들과 마법사로 지목된 그랑디에는 공통적으로 ‘짝패(double)’가 될 잠재력이 높은 관계로서 공동체에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 이러한 짝패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확대될 때, 이는 집단적 차원의 문제로 발전한다. 또한 짝패의 일반화가 ‘폭력적 만장일치’가 발생하게 한다. 종교전쟁과 흑사병이 막 지나간 루됭에서 대규모의 혼란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동체는 집단적 차원에서 그랑디에라는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제의’라는 명목 하에 발생하는 작은 폭력으로 큰 폭력을 예방하는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폭력의 양면성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에 있어 마귀와 성령처럼, 제의와 폭력은 불가분 관계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상이 희생양이 되는 것일까? 종교적으로는 예수의 삶이 이러한 희생양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희생양은 공동체를 대신하는 대상이기에 공동체와 유사한 면을 공유하고 있어야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구분되어야 한다. 위르벵 그랑디에는 카향 출신 인사로서 외지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사회의 가장자리에 처할 위기에 위그노 교도였다. 따라서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중심의 사람들은 그에게 죄를 덮어씌웠고, 거짓일지도 모르는 여러 여성들의 증언들에 의해 화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랑디에의 희생이 후대에 추시된다는 점은 희생양으로 인해 평화를 되찾았다고 구성원들이 느끼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메커니즘은 무지의 상태에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반복되게 되며 많은 희생양을 낳게 된다.
3. 주체와 타자, 양면을 뒤집기 위한 연극
역사 서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갖는 대상이자 정상의 기준을 주체로, 이와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대상을 흔히 타자라고 칭한다. 타자가 있기에 주체가 존재하고, 주체가 있기에 타자가 존재하기에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르토는 루됭의 ‘마귀들림’ 사건 속 타자인 수녀 잔 데장주가 악마의 빙의에서 주체인 성령의 빙의로 전환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저서에서 이를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고 표현하며, 잔 데장주와 쉬랭의 입장이 서로 바뀌면서 양면을 뒤집는 연극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연극은 16-17세기 초반에 유럽의 수도원에서 개인(혹은 소수그룹)을 중심으로 발생했으며 마귀 들린 수녀는 피해자로 여겨지며, 배우 간의 계급적 동질성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마녀 사건과 구분된다. 이에 따라 구마의식에서 방관자인 민중은 마법의 원 속에 자연스럽게 배우로 참여하게 되며,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연기하게 된다. 생생한 연극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사향장미의 향기를 통한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후각사와 피해자 역할인 수녀들이 치료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을 논하는 미시사 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와 더불어 위그노 교도 중심의 종교 문명이 다시 가톨릭 중심으로 개편되고 왕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는 데에 있어 루됭에는 변화과정을 가속화 시키는 통과지점이었다는 사회적 상황이 반영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내부의 저항이 멀리서 오는 예기치 못한 불안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른 질서로 ‘변신’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신은 주체와 타자의 양면이 뒤바뀌게끔 하는 역사가의 새로운 시선을 포함한다. 역사란 과거에 대한 개연성이 있는 설명이며,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각도에 따라 그 사건이 갖는 의미는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저자 세르토는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것들을 불러오고, 가장자리에 위치해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끄집어내는 노력을 새로운 역사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 따라서 ‘마귀들림’사건은 주체의 입장에서 이 사건이 ‘신사들의 즐거움을 위한 서커스’일 수 있지만, 동시에 타자의 새로운 사회적 형상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제기되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의 새로운 문제의식은 다각도적인 시선의 역사관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에 흥미있는 이들은 한 번 쯤 읽어볼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