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 to reading. 이 책의 제목에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독서, 그 중에서도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권유하는 책이다. 최근 오랜 출판계의 트렌드인 자기계발서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겠는데, 여타 다른 자기계발서와 다르지 않게, 주로 ‘인문고전은 이렇게 많은 위인과 유명한 사람들이 즐겨 읽었고, 그들의 성공에 인문고전 읽기가 매우 큰 영향을 끼쳤으니 모두 인문고전을 읽자.’라는 내용이 골자가 된 책이다. 책은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존 스튜어트 밀 등의 인류역사상 손꼽히는 천재로 불리는 인물들이 유년 시절에는 영특하지 않았지만 인문고전 독서의 영향으로 억눌려 있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서 책의 1장은 마치 마르크스의 주장과 같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역사상 항상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금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현대에 이러서는, 지배-피지배계급이라는 구조가 지배국가(선진국)와 피지배국가(후진국)이라는 구조로 바뀌었으며 선진국은 인문고전 독서를 권장하고 열심히 하여 더욱 부강해지는 반면, 후진국은 그렇지 않아 더욱 가난해진다는 주장을 펼치며 인문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러면서 인문고전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고전을 읽는 풍토가 사라진 것이 아깝다며 인문고전을 중시한 국가들과 인문고전을 사랑했던 위인들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로마제국, 대영제국, 미국,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19-20세기 일본, 카를 비테, 장한나, 조지 소로스, 앙드레 코스톨라니, 벤저민 그레이엄, 이병철, 정주영 등 세계를 주름잡았던 강대국들부터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금융가, 경영가, 예술인 등을 예시로 들며 끊임없이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과 우리나라에서 현재 인문고전이 경시받고 있으며 이러한 세태는 옳지 않다는 주장은 나로서도 백번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감히 말하자면 저자가 그 주장을 풀어내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거나 너무 편파적으로 써져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지만 간단히 책의 문제점을 2개만 뽑아 보겠다. 첫 번째는 책에 잘못되었거나 확인되지 않았거나 아직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사실처럼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책의 초반에 써져있는 아인슈타인에 관한 얘기이다.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세 살까지 말을 못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지적 장애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며, 중학생 때는 나쁜 기억력과 산만함에 고등학교에서는 퇴학당한 흔히 말하는 ‘바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사실과 다르다. 그는 12-13세부터 혼자 미적분을 공부할 정도였고, 당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기관이었던 김나지움에 들어가서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는 주장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당시 독일의 군대식 주입식교육에 굉장한 스트레스와 반감을 가지고 있던 아인슈타인을 학교에서는 매우 반항적인 아이라고 생각했고, 마침내 스트레스로 건강이 안 좋아진 아인슈타인이 스위스로 유학을 간 것뿐이다(위키피디아 출처). 내가 찾은 것은 이정도였지만 아마 모든 예시를 하나하나 더 파고들면 이와 같은 경우가 하나쯤은 더 나올 것이다. 두 번째는 저자 본인의 종교관이 지나치게 강하게 드러나 있어서 저자의 논리를 흐트러뜨리고 독자에게 오히려 반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건국 초기 미국에서 크게 존경받는 학자이자 목사였던 조너선 에드워즈와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경제력을 지녔고 같은 수의 가족을 가진 마커스 슐츠라는 사람의 후손을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조사해보았는데, 성경을 삶의 지표로 삶고, 지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힘쓰는 전통을 후손에 물려준 조너선 에드워즈의 후손은 부통령, 상원의원, 교수, 의사, 목사, 군인, 저술가, 법조인 등의 전문직이 대부분이었고, 그렇지 않은 마커스 슐츠의 후손은 전과자 96명, 알콜 중독자 58명, 창녀 65명, 빈민 286명, 노가다꾼 460명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예시를 써놓은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인문학 독서와 더불어 영적인(기독교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즉시 ‘그렇다면 모든 대대로 무교이며, 인문고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의 후손은 모두 전과자에 창녀가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저런 사회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표본도 적고 영향을 끼치는 다른 요소들을 전혀 통제하지도 못한 조사지표를 책에 쓸 이유도 없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책이 주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인문고전 독서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인문고전 독서부족에 대한 걱정은 옳다. 하지만 너무 과장되고 허황된 예시들과 저자가 계속 드러내는 본인의 종교관, 뭐 성경이나 목사들,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진정으로 독서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주는 얘기들은 책을 보는 내내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책을 빌려보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겠지만 돈을 주고 사겠다면 굉장히 말리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