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 토머스 홉스 지음 / 동서문화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유명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고전이다. 어느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홉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알아야 한다. 홉스가 영국에서 태어난 그 해에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했다가 영국 함대에게 대패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영국에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는 발판이 되었다. 에스파냐가 영국을 침공한다는 소식을 들은 홉스의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는데 충격에 홉스를 조산했다. 홉스는 출생부터 전쟁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안고 태어났다. 홉스는 귀족집안인 윌리엄 캐번디시의 가정교사가 된 뒤 그의 아들 윌리엄 2세와 유럽을 여행하며 당시 급변하던 유럽의 정세를 직접 경험한다. 당시 유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로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르네상스 시기가 출현했으며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네덜란드와 같은 개신교 국가들이 독립을 했다. 영국은 종교적 갈등이 깊어져 내전이 발생했다. 홉스는 유럽 각 국을 여행하며 왕과 귀족 사이의 투쟁, 내란, 정치적, 종교적 분쟁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침내 홉스는 여러 세력들 간의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리바이어던’으로 표출됐다. 어느 철학자건 본인의 삶이 사상에 녹아드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국가를 다스리는 중세의 환경은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질서였고 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본성과 국가의 관계를 도출하며 무신론과 신성 모독이라는 오해를 받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금서로 지정돼 빛을 보지 못했다. '리바이어던'이 세상에 나왔을 당시 영국은 왕당파와 의회파가 격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무신론을 주장한다며 왕당파로부터 버림받고,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며 의회파로부터 배척당했다. 하지만 과학을 중시하고 백성을 국가의 주체로 전제하며 국가의 성립과정을 저술한 이 책은 지금은 사회계약론의 고전이 됐다.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작동원리를 인간의 정치행태와 연결시켰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개인을 제어할 수 있는 공통의 힘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원하는대로 어떠한 일을 해도 된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는 상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공멸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인간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군주를 세워 각자가 가진 권리를 양도한다. 폭력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존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국가를 만든 것은 신도, 왕도 아닌 국민이다. 국가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홉스와 같이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던 사상가의 철학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홉스와 달리 존 로크는 인간이 서로가 평등하며 이성에 의해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를 자연상태로 정의했다. 로크는 자연상태에서 통치자가 필요 없지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봤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권한을 군주에게 이양했지만 그 권력은 개인의 재산이 위협받을 때에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다. 군주의 형성 이전에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중시한 로크는 군주의 권력을 최소화한 반면 홉스는 강력한 국가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봤다.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 모두 국가의 형성에 적용되는 사상이다. 홉스의 국가가 전쟁과 갈등이 깊은 시기에 출현하는 강한 국가의 형태라면, 로크의 국가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 정치적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안 경찰국가 정도의 형태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홉스는 그의 생애를 사상에 담았다. 홉스는 국가의 주인에 대한 혼란과 함께 많은 국가의 생존이 불확실한 급변의 시기를 살았다. 홉스는 존립이 위협받는 국가에게 안정적이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도자들이 가져야할 국가관을 제시했다. '리바이어던'은 격동의 시기를 해쳐나가기 위한 저술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앞선 획기적인 사상으로 영국 권력의 두 축인 의회파와 왕당파 어느 편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홉스는 많은 국가를 경험하고 돌아온 자국에서 일어난 내전을 보며 서로를 공격하고 전쟁을 일삼는 자연상태의 인간의 모습을 목격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홉스는 더 강력한 군주의 출현을 희망한 것 이다. 개인들로부터 양도받은 권력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군주가 존재했다면 영국의 내전을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중요한 것은 홉스가 단순히 절대군주의 출현과 강한 권력을 옹호한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의 자극적인 면이 부각돼 마키아벨리처럼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홉스는 개인이 군주에게 권한을 양도하는 것은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군주를 구속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나오는 주권자의 형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작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군주가 아니라 강력한 군주를 만든 수많은 개인이라는 것이다. 자연상태의 개인이 안전을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는 사상은 무엇보다 군주와 국가보다 개인이 앞선다는 주장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중세시대 수 백년은 신을 앞세운 종교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중세의 종교적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중세를 지나 근대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토마스 홉스의 사상을 담은 '리바이어던'은 당시엔 금서로 지정되는 등 핍박을 받았지만 근대시대의 시작을 함께하는 사상이 되었다.
'리바이어던'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그런 강력한 군주가 출현해서 횡포를 부리는 어떻게 저지할 것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홉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겉만 보고 하는 비판이다. 홉스가 강조했듯이 개인의 위임에 의해 강력한 군주가 출현하는 순간 개인은 군주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으로부터 성립된 국가는 절대왕정국가와는 다른 형태이다. 지배자를 위해 운영되는 절대왕정국가와는 달리 개인의 권한을 위임받은 군주는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강력한 군주라고해도 자신을 추대한 개인을 향해 권력을 휘두를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 군주가 개인을 해치는 순간 군주도 없어진다. 국가와 군주는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일 뿐이다.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며 다른 권력자의 출현을 막기위해 한 명의 군주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고 강력한 통치를 지향하는 홉스의 사상은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을 필수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또한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행하는 역사적인 시기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홉스의 철학은 정치철학사와 유럽역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