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찾아서
“내 마음이야.”라고 우리는 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었을까, 인류가 언제부터 마음이란
사치스러운 감정을 소유하게 되었는가를.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근대에 이르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마음의 작용’이 어떤 기조를 이루는지에 대해 섬세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마음은 관념적인 존재로 비가시적이며 상태를 규정하기 어렵고 변덕스럽다. 어떤 때는 자산, 지위 등 물질적 요소에 비해 확연하지 않은 하찮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다가도, 특정한 순간에는 마치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인양, 세상의 모든 작동원리인 양 감히 논할 수 없는 숭고한 무언가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음』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소제목은 ‘선생님과 나’,
‘양친과 나’, ‘선생님과 유서’로, 소세키는 그 중 가장 마지막 장에 가장 비중을 두고 있다. 작품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선생과의 교제관계를 통해 그가 은폐해 온 회한의 과거를 알아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는 과거 선생님과의 특별한 경험을 회상하며 당시 느꼈던 감정을
서술한다. 학생인 ‘나’는
해변으로 휴가를 나왔다 외국인과 함께 있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느껴 그에게 접근한다. 선생님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한 채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고 가늠 불가능한 선생님에 매료돼
그의 집을 방문하고 아내를 알게 되며 점차 심리적 거리를 좁혀나간다. 그러나 선생님은 때때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을 공개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던 중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몇 달간 체류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선생님께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선생님은 ‘나’에게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없겠지요”라고
말하며 선생님이 그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선생님은 과거 제법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숙부 슬하에서 자라왔다. 그는 사람을 잘 믿고 명랑한 성격이었으나 친척들이 유산 문제로
자신을 속이고 심지어 결혼을 강요해 재산을 가로채려 했음을 알고 절연한 고향을 떠난다. 선생님은 인간에
대한 불신을 안고 도시의 어느 부인과 딸인 아가씨가 사는 하숙생으로 들어간다. 돈과 인간에 불신도 잠시
선생님은 그곳에서 점차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며 사랑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하숙생이 된 친구 K 역시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어 선생님은 고민 후 부인에게 아가씨를 달라고 해 승낙을 받는다. K는 충격 받아 자살을 선택하고 선생님은 죄책감에 평생을 괴로워한다.
시대정신의 충돌
작품이 창작된
시기는 1914년, 즉 다이쇼 3년으로, 45년 간의 메이지 시대를 거쳐 본격적인 근대로 접어드는
변혁의 시대였다. 일본은 메이지 세대를 기점으로 전통적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며 변화의 시대를
맞는다. 메이지 세대 다음으로 나타난 다이쇼 세대는 전통 일본 사회 안에서 봉건주의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근대화의 물결 속에 성장한다. 작중에서는 총 세 세대가 각기 다른 가치관과 이념을 지니며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노기대장과 아버지로 대표되는 봉건시대를 살아온 노년세대, 선생님과 K로 대표되는 봉건에서 개화시대로 넘어가는 중년세대, 마지막으로 ‘나’가 속한
개화기를 맞이하는 청년세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 세대는 개화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며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부딪히며 근대를 향해 나아간다.
대표적인
갈등은 부자 간의 지향점 차이를 들 수 있다. 메이지 유신의 이념은 간단히 말해 부국강병과 인재양성으로, 부모는 사회적 공명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자식들을 도쿄로 유학 보내려 했다.
그러나 자식은 새로운 가치관을 바탕으로 개인주의적인 진로와 삶을 택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킨다.
K의 양부모가 그를 의과대학에 진학시키려 했으나 K는 몰래 다른 전공을 선택한다. 선생님과 나 역시 출세하기를 바랐던 부모의 바람과 달리 사회와 동떨어진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간다.
마음: 사랑, 관계, 그리고
에고이즘
마음은 논리적이지
않다. 불변의 진리나 어떠한 법칙에 근거하지 않아서 불분명하며 예측 불가능하고 그래서 더 흥미로운 법이다. 개화기를 맞아 비로소 개인이 된 인간은 사랑, 죄책감, 동경 등 마음을 마주한 후 어떻게 행동했을까?
선생님의 마음은 모순 그 자체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고 싶지만 (과거의 기억 때문에) 사랑할 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 동시에 누구라도 신뢰하고
싶지만 신뢰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단 한 명이라도 신뢰하고 싶어 끝내 ‘나’에게 편지를 통해 비밀을 고백한다. 또한, 선생님은 돈의 가치를 강조하며 돈 앞에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얘기했지만 결국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다름아닌 그의 ‘마음’이었다. 선생님과 K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나는 K가 죽은 원인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머리가 단순히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지배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내 관찰은 단순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K는 바로 실연 때문에 죽은 거라고 금방 간주해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차츰 침착한 기분으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렇게 쉽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 그것도 아직 불충분했습니다.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홀로 남겨져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돌연히 죽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율했습니다. 나도 K가 걸은 길을 K와
똑같이 걸어가고 있는 거라는 어떤 예감이 이따금 바람처럼 내 가슴을 스쳐 지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K의 죽음에 대해서도 평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연적에게 패배해서,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에 같은 고전문학적 서술이 아니다. 선생님은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 염려되어’서라고 하며 인간의 마음을 매우 깊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사랑 역시 종래의 문학에서 등장되던 그것과는 사뭇 형태가 다르다. 선생님은 숙부가 혼처를
정해주자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사랑하는 상대를 정해 혼인한다. 또한 선생님은 사랑을 성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등
나름의 기준을 정해 구별하려는 시도를 한다. 더불어 사랑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를 배가시키는 주변
요인에도 주목하는데, 이전에는 부인의 뻔히 보이는 수작을 곱게 보지 않았으나 연적이 등장하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등 미묘한 신경전을 통해 사랑 자체뿐 아니라 주변 요인에 따라 강렬함이 배가됨을 지적한다.
사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에고이즘의 입체적 확장도 드러난다. 선생님은 오래된 친우인 K 대신 새롭게 만난 아가씨를 택해 결혼한다. ‘나’ 역시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임에도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당장
기차를 예매해 떠나버린다. 다시 말해, ‘나’는 육친에 대한 정을 버리고 타인인 선생님을 선택한 것이다. 신출의
타자를 갈구하는 아욕 때문에 구연을 져버린다는 면에서 선생님과 ‘나’는
에고이스트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훗날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 존경을 거부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지금 이상으로 외로울 훗날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뎌 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그 대가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마음』은 출판 당시 전폭적인 공감과 인기를 끌었다. 당대 사람들은 선생님이 윤리의식 때문에 평생을 속죄하는 모습, 아버지가
노기 대장의 죽음에 좌우되는 일에 충분히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2018년을 살아가는 현대인 독자는 작품을 읽고 난 후 선생님의 죽음에 쉬이 공감하지 못한다. 물론
선생님이 K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나 일생 사회에 나가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다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합리적 사고를 억압하는 감정 따위?
현대에 이르러는
아이러니하게도 감정 자체를 원하고 있다. 연애를 안 하면 마치 뒤쳐진 것 같은 풍조가 강하고 사회는
항상 꿈을 가져라, 취미를 가져라고 말하며 마음을 요구한다. 선생님과
K는 아주 개인적인 감정인 사랑조차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죽음을 택했는데, 지금은 가진 마음이 너무 적다고 여기며 마음이 아닌 것까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실상이다. 하나의 마음도, 견디기 힘들고 무거운 것인데 왜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며 가지려고 하는 것일까? 마음 하나에 평생을 바쳤던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음이 진실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