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보면 저자가 진보정치의 한계점을 꼬집는 대목이 등장한다. 첫째로 진보정당은 그들만의 대중언어가 부재하며 대중언어 대신 학술분야로부터 그 언어를 빌어다 쓴다는 문제점으로 진보 정치가 표방하는 가치나 이념체제가 대중이 수용하기에 지나치게 어렵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진보 정치를 지지하는 대중들이 진보 정당이 내세우는 이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며, 이는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관망한다. 맞는 말인데 대중은 왜 맞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그들이 진보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수용할 뿐이다. 또한 분명 맞는 말을 하는 진보 정당이 어렵게 얘기하다 보니 이해 못한 대중들은 분명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진보 정당과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패권을 차지하는, 대중성을 갖춘 보수정당에 휩쓸려 줄을 서버리기 십상이다. 둘째로 진보정치는 정치적 소명을 조직과 조직의 합의로부터 할당받아서는 자발적 권력의지가 거세된 조직원으로서 활동하게 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정치적 단독자이자 주체로서 진보정치를 사고하고나 활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진보정치가 조직의 이념이나 정파의 노선보다 대중의 마음을 우선으로 읽어낼 줄 아는 정서적 통찰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정치적 연대를 위해 노력하는 페미니즘도 또 하나의 정치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페미니즘 담론은 진보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진보정치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한계가 페미니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노동자연대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여성과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이라는 토론회 『맑시즘2017』이라는 포럼이 개최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접근은 점점 날로 어려워지고 복잡해져만 간다. 또한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은 페미니즘을 ‘학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이러한 접근은 페미니즘의 접근 장벽을 더욱 높이는 꼴이며 가부장제라는 기존의 보수이념에 여성을 안주시키며 종속시킬 뿐이다. 이와 같이 현질서, 현 이데올로기에 반해 개혁적,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페미니즘 담론이 게토화, 엘리트주의화를 자행하는 것에 대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진보를 표방하는 가치체제가 학제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페미니스트는 단독자이자 주체로서 활약하는 것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는 페미니즘이 여성학이라는 학문으로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은 오로지 정석이자 정도이기에 한 가지 길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은 그 속에서 보수주의, 자유주의, 절충주의와 같은 요소들은 전제될 수가 없음을 함축한다. 최근 필자가 느낀 페미니즘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표방하는 페미니즘이 정통이고 정석이며 네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여기에 맞춰라.’ 이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정치적 연대’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가운데 굉장히 과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하는 바이다. 이렇듯 페미니즘이 오로지 한 가지 정도만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정치적 연대'라는 것이 형성될 수 잇는 비전이 보일지 의문이 들었다.
필자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사람에게 주입되는 순간 다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각자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느냐에 따라 동일한 이데올로기도 달리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관해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