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방학이 되면 동그란 원 안에 금을 이리저리 그어 '방학계획표'를 만들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계획표 대로 지키긴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지키지도 않을 방학계획표를 만들게 했을까?
효율적인 시간 활용, 자투리 시간 활용, 틈새 시간 활용 등 여태껏 살아오면서 정말 '시간 활용'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내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시간에 대해 잔소리를 많이 들은 건 고3 수험생 시절이었다. 그 때는 1분 1초를 아껴가면서 공부했고,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공부해야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나는 요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내가 지금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무언가 할 수 있는데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이 나를 아무 책, 아무 일이나 잡고 하도록 충동한다. 마치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들이 날 뒤쫓는 것처럼 말이다.
'모모'라는 책에서 중요한 사람은 모모가 아니라 회색 신사다.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축하면 다음에 더 쓸 수 있다고 말하며, 더 시간을 잘게 쪼개어 더 많은 일을 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회색 신사의 말처럼 24시간이 부족하도록 일을 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24시간이 부족하도록' 무언가를 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모모는 웃음을 잃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시간'을 대면하게 된다. 모모의 책에서 시간은 연못 위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추로 표현이 된다. 추가 연못의 한 쪽 가장자리로 오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추가 다시 저쪽 가장자리로 가면 이쪽에 있던 꽃은 지고, 저 쪽에서 꽃이 다시 피어난다. 다시 추가 이쪽으로 오면 저쪽의 꽃은 지고 이쪽의 꽃이 피어난다. 한가지 규칙은 반드시 나중에 핀 곳이 더 아름답고 화려하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내가 '모모'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이다. 현재의 시간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예찬할 수 있을까. 매순간 순간은 아름다운 꽃이며, 이전의 순간보다 지금의 순간이 더 고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시간을 남김 없이 쓰는 것보다 매순간을 보람차게 보내길 바란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이 시간이 지난 후, 이 시간에 무엇을 내가 남겼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시간에 무엇을 느꼈는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