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읽고 시계로 가득한 세상 속에 숱이 많아 삐죽삐죽해진 검은 머리에 낡은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뒷모습이 그려진 <모모>의 표지. 예전에 <모모>가 베스트셀러 선반에 꽂혀있을 때 읽어보려고 했었지만, 결국 그때 읽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 옅은 노란색 모모의 표지가 눈에 띄어 모모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남들의 얘기를 정성스레 들어주고, 주변 세상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모의 주위에 어느 날 차가운 냉기를 내뿜는 회색 신사들이 나타난다. 회색 신사들은 늘 시간을 아껴야한다며 바쁘게 생활할 것을 강요하고, 사람들은 삭막해지게 된다. 모모에게 회색신사들은 아래처럼 말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예부터 우리나라는 입신양명(立身揚名)해서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고 부모님께 효도해야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이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과학 고등학교를 들어가던 무렵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국내에선 명문대로 꼽히는 성균관대에도 들어오게 되었고, 학교생활도 무리 없이 잘 해왔다. 몇 년 간 참 힘들게 살았었지만, 그래도 잘 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재벌가 총수들의 이혼과 재벌가 자제들이 엇나가는 뉴스를 접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살 저 사람들도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책임져야할 직장이란 집단이 있으니까, 가족에게는 소홀하게 되는구나. 문득,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대학이 집에서 매우 멀고, 집 가는데 교통비도 엄청 들다 보니 집 안 간지도 참 오래 되었고, 부모님과 동생과 있을 시간이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하던 친구들과도 대학이 멀리 떨어지다 보니 거의 보지 못했다. 내가 더 잘하고,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고, 더 뛰어나지기 위해 나는 나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을 잘 보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에 박사를 하러가거나 하면 더 심할 것이었다. 그 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결론을 내린 건, 그건 나에게 있어 행복하지 않다는 거였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인정받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난 평범하더라도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돈은 딱 그 정도만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기에 나는 회색신사들을 피하고, 두려워하던 모모의 행동이 참 이해가 되었다. 늘 ‘더 빨리, 더 많이’하길 바라는 현대의 효율에 입각한 현대적 사고를 나타내는 회색 신사들 때문에 세상은 참 삭막해졌으니까 말이다. 쉽게 쓰여 진 동화지만, 현대의 삭막한 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읽었던 동화이다. 다음에 취업하고 직장인이 돼서 다시 읽으면 또 느낌이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