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집어든 때는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책을 찾고 있던 시기였다. 내가 지망하는 분야와 최대한 '관련이 있어보이는' 도서를 골라야 했고, 그래서 근대 교육사에서 가장 유명한 교육자들 중 하나인 몬테소리를 다룬 책인 '몬테소리 평전'을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책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생활기록부에 책의 어떤 내용을 쓰는가보다 어떤 책의 제목을 쓰는 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우연하게도 돌고 돌아 그녀에 사상과 교육 활동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되는'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다.
이 책은 몬테소리 '평전'이다. 따라서 마리아 몬테소리의 학문적 활동이나 사상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까지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교육자' 몬테소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몬테소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특정한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삶 또는 자녀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전문가적 자질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위인전이나 최근에 뉴스 기사로는 물론,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몬테소리도 의외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혼외의 관계에서 낳은 외아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에야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교육자' 라고 하는 사람이 여타 이유를 막론하고 자신의 아이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들의 존재는 '잘 알려진 유명인 여성'인 몬테소리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고, 결국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미 의대생으로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 이러한 차별을 한 차례 가혹하게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아들이 성장한 후이기는 했으나, 그녀는 뒤늦게나마 아들을 옆에 두고 어머니의 도리를 다 하려고 애썼다. 보통 부모에 의해서 인정받지 못했거나 그 존재를 차단당한 자녀들은 엇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아들인 마리오가 이후에도 어머니인 마리아 몬테소리를 옆에서 헌신적으로 보필하고 아들의 도리를 다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도 어머니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외동딸인 그녀의 아버지가 전통적인 여성상 중에서 최고의 지위라 여겼던 여교사가 되는 것에 저항하려고 의대에 입학했지만, 결국 돌고돌아 자신이 절대 종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교육학'이라는 분야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위인이 되었다. 이렇게 어찌보면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인생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나 또한 '여자에게는 교사가 되는 게 최고'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 아빠의 말에 오기가 생겨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결국 이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다. 정작 전공 선택을 할 때는 그 누구의 간섭도 없었는데 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몬테소리는 책 속에서 끊임없이 주체적인 아동과 수동적인 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든 교육 활동은 교사의 의도대로, 교사가 주체가 되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한 사람의 인간인 아동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보조 해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찍이 아동들이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막 다뤄도 되는 존재, 차별받아도 되는 미성숙한 존재로 대우받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최근의 사회 문제 중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노 키즈 존' 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제한하지 않는 일부 몰상식한 부모(여기서는 교사의 역할을 해야 할)에 대해 비판한다. 어느 정도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행동이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행동 특성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 인정한다. 그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제재('벌'의 개념)가 가해지는 대상은 결국 어린 아이들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몰상식한 부모'도 그들끼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어른들이라는 거인들이 그들의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내쫓고 권리를 빼앗는 것은 이들을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식당에 고양이나 강아지를 출입금지 시키는 것과 다를 것이 뭔가 라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교육'은 실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수동적인 교사가 되는 것은 능동적인 교사가 되는 것보다 어렵다. 사촌동생들과 놀아줄 때만 해도 아이들은 결코 '아이들의 행동 패턴'이라고 교육서에 제시된 것과 같은 행동만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다양한 변수 상황에 맞추어 인내하고, 지켜봐주고, 때로 적절한 타이밍에 도와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더 큰 것을 만들어 낸다. 비록 지금은 눈 앞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결실을 맺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마리아 몬테소리도 아마 이러한 '가능성' 하나에 그녀의 인생을 걸었던 것 같다. 그 왜, 상투적인 말로 '어린이들은 이 나라의 미래' 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