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라몽은 ‘좋은 기분’을 찾는다. 샤갈전을 가려고 하다가 사람이 많은 걸 보고 공원을 산책하며 소소한 웃음거리를 보기로 하고 샤를이 주도하는 칵테일 파티에 가기도 한다. 알랭은 ‘배꼽’에 대해서 의미를 찾기 시작하여 그가 어렸을 때 떠난 어머니와의 대화, 자신의 탄생 비화 등을 상상한다. 샤를은 위독하신 어머니를 걱정하며, 한편으로는 ‘24마리 자고새’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려 노력한다. 칼리방은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파티에서도 파키스탄인인척 연기한다. 다르델로는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좋아하고, 다시금 생기가 돈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CCTV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주인공들의 모습들과 샤를의 24마리 자고새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스탈린의 이야기까지 병렬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와서는 샤를의 ‘인형극’으로 인해 스탈린의 이야기가 현재와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인 ‘무의미의 축제’는 무슨 의미일까? 세상에는 무의미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긍정주의자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것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 경계를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책에는 끊임없이 탁월함과 보잘것없음, 진실과 농담, 일상과 축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들을 통해 밀란 쿤데라는 당당히 의미 없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선언한다.
과연 우리의 삶 중에, 아니 우리의 하루만을 놓고 보아도 탁월하고 의미 있는 행위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면 3~4 시간 정도가 될 것이고, 그 외에는 특별히 멋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잠에서 깨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이랑 소소한 잡담을 하고 밥을 같이 먹고 집에 와서는 운동을 조금 하고 공부를 하거나 컴퓨터를 하고 놀거나. 이것이 내 일상이고 현재 나의 삶인 것이다. 우리의 삶의 본질이 바로 이렇게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의미한 것들로 가득 찬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무의미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용기이며, 이것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제 이 세상의 중심은 ‘탁월함’이 되었다. 끊임없이 탁월할 것, 그리고 의미 있는 무언가, 성공을 요구한다. 1등 아니면 기억 되지 않으며,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억 너머로 잊혀진다. 기업, 대학, 지역까지, 모든 것을 탁월함과 보잘것없음으로 나누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우리의 삶의 본질은 무의미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되었기에 농담, 시답잖은 행동들은 이제 위험한 것이 되어버렸다. 진정으로 좋은 기분 그리고 평안을 주는 것은 모두 그러한 무의미한 것들인데도 말이다. 나도 탁월해지고자 노력한다. 세상의 요구에 맞춰야 세상도 나에게 무언가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족쇄일 수도 있다. 과연 탁월해지면 행복할까? 탁월함이 주는 그 순간의 희열과 행복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탁월해지는 것은 참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내 입장에서의 예를 들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공부’(현실에서 탁월함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를 많이 하면 의미 있었고 뿌듯하며, 적다면 의미 없고 공친 하루라고 생각했다. 무의미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탁월함에 대한 강박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탁월함은 보잘것없음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고, 보잘것없음 역시 탁월함이 주지 못하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주는 듯하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군생활이 우리에게 일종의 평안을 주는 시기였음을 깨달을 수도 있듯이.
여담으로 ‘인간은 고독 그 자체일뿐이다. 여러 가지 고독으로 둘러싸인 고독’이라는 프랑크 부인의 말이 정말 인상깊었다. 아무리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를 맺고, 집단이 형성되고, 구성원이 되더라도 인간의 본질은 고독이기에 그냥 고독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고독일 뿐이라는 뜻인 듯 하다. 아무리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도 본질적인 단절이 있음을 생각한다. 결국엔 모두 혼자다. 요즘 많이 느끼는 감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