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의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zation and Capitalism>을 읽었다. 브로델을 읽을 생각을 다 한 것은 <역사사회학> 수업을 듣던 시절, 선생님께서 중심있게 다뤘던 사회 없는 역사학과 역사 없는 사회학의 뼈저린 반성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한 젊은 교수님께서 사회를 잘 알고 싶으면 근대형성사를 읽어보면 좋다고 하셨던 게, 그 중에서도 브로델을 말씀하셨던 게 꽤나 기억에 남아서다.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zation and Capitalism>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부작을 마친 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브로델이 한 강연을 옮긴 책이다. 분량은 100 쪽이 조금 넘어가지만, 두번째로 읽는 원서라 그런지 3일 정도 걸렸다. 그래서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을 듯하고, 전체적으로 받은 인상과 떠오른 아이디어를 남겨보도록 하겠다.
브로델에서 경제는 세 가지 층으로 구분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 외에도 그 아래에 있지만 좀처럼 눈에 안 띠는 일상생활(dailylife)과 그 위에 있는 자본주의(capitalism)이 그것이다. 일상생활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모든 물질적인 삶을 의미한다. 브로델은 여기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인구 수 변화사, 식생활, 기술 등이 그것이다. 그에게 경제의 세 층은 서로 상호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듯 하다. 중세 말부터 근대 초 사이에 흑사병으로 인구 수가 줄면서 생산속도가 줄자 도입된 것으로 보고, 각국의 주 곡물이 식문화에 따른 주생산품에 의해 정해진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이다.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도시의 형성과 시장체계를 이야기하면서 시장경제(market economy)를 이야기 한다. 그런데 도시 이야기는 상업만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도시를 만든 주역인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애초에 병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시장을 교환이 일어나는 장소로만 본다면, 주류경제학에서처럼 자본주의란 말은 따로 필요없어진다. 브로델은 역사적으로 시장과 역시장(counter-market)이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대상인들은 장(fair)이 열릴 때 그 주변부에서 거래하고 또 서로 수익을 최대한 많이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즉, 레닌의 생각처럼 자본주의 성장에 따라 자유방임 경제가 독점 자본주의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본주의는 독점이다. 예컨대 채권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부터 지불해야할 금액이 클 때 생산자가 구매자를 끌어오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활발히 유통되고 거래됐으며, 영국에서 산업화 17세기에 이미 증권거래소(bourse)는 무역센터(trade center)와 함께 장을 대체했다. 또한 상인들은 자유시장 바깥에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브로델에게서 막대한 부를 소유하는 계층, 즉 소수의 대상인(merchant) 혹은 자본가는 굉장히 중요한 탐구주제였던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브로델에게서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든 발견되는 위계(hierachy)이기 때문이다. 그는 흔히 근대의 종별적 특징으로 지목되는 분업에 대해서도, 중세의 대상인들은 결코 분업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은 투자 종목을 늘 바꿨는데, 이유는 자본이 덜 축적되서가 아니라 높은 수익성이 보장된 산업이 늘 변했고 체계가 갖춰진 분야가 그닥 많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다. money trading은 예외인데 여기서는 사실 종종 망하기 일수였다.
그럼 도대체 이 자본주의란 것이 사회에 용인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역시 부르주아지에 주목한다. 부르주아지들은 영주가 잘 못하는 일들을 보완해주며 기생적으로 커왔다. 그랬기에 그들은 자식들을 법률가 등 전문직으로 키웠다. 물론 그들은 영주들만 갖는 특권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투쟁은 몇 세기에 걸친 것이었으며, 그들의 재산과 권리는 아주 조금씩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이뤄낸 사회 역시 반은 봉건적이다. 재밌는 것은 브로델은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 상속권의 존재를 서구 세계경제가 다른 세계경제를 포섭했던 원동력으로 본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에는 과거시험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했지만 결코 막대한 정치권력의 방해로 이뤄지진 못 했으며 이슬람의 경우 사유재산권의 유효기간은 재산권자의 수명이이었기에 서구처럼 막대한 부를 소유한 대가문을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 3권에서 브로델은 세계경제(world economy)를 분석한다. 그의 세계경제는 지역에 따라 나뉘는데, 현재는 영국중심의 대서양-유럽 세계경제 지배 이후 성립된 전세계 경제(economy of world)가 하나의 세계경제로 묶인다. 물론 중심지 역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그가 보기에 세계경제는 과거부터 불평등의 문제를 낳는다. 월레스타인과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그런데 이 원천을 그는 상대적으로 대륙에서 떨어져있는 영국의 섬나라 근성과 국내시장의 성립에서 찾는다. 사실 암스테르담이 중심지였을 때까진 그래도 도시가 중심지였고, 영국에 이르러 달성된 것은 다른 국가에 비해 동떨어져있기에 국내시장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브로델은 상당히 보수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불연속점은 없다. 현재(1970년)의 경제 현실 역시 경향이 강화된 것이지,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당대의 인간으로서 비겁하게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비판적으로 바라봤고 어느 한 쪽 편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현재에 이르러 그의 가치가 배가된다고 생각한다. 소련 몰락 이후 현실 사회주의 국가(또는 공산권)에서도 암시장이 존재했고, 국가의 독점 하에 자본축적이 이뤄졌고 소수에 의한 부패가 존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성격이 자본주의 체제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지는 따져봐야겠지만 말이다.
과연 그의 저작을 읽는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 현실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사라지고 냉소만 남았으며, 복지와 저임금 노동자의 차별적 처우개선 요구는 언제나 북한과 연결해 우리의 자유와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만 치부된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해 유효한 문제제기가 사회적 파장력을 갖진 못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늘 부각된다.
한편, 브로델 그 이후의 프랑스의 지적전통을 봐도 재밌는 점이 많다. 위계와 상속에 대한 문제가 부르디외 평생의 연구과제가 되고, 피케티에게서는 상속이 그를 스타덤에 올려준 것 역시 주목할만하다. 위계와 상속의 문제는 과연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외생적인 문제인가? 그의 논의는 이 외에도 근대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재벌 가문의 성장과 자본주의 발달에 대해 탐구할 때도 도움이 될 듯 하다.
한편, 브로델에서 내가 찾을 수 없었던 질문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타율적으로 근대화가 이뤄진 국가는 어떠한가? 물론, 근대화의 조건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메이지 유신을 통해 빠른 근대화에 성공했던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이 없었다면 근대화는 이뤄지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식민지 출신인들은 어떻게 본인들의 사회를 파악해야할까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