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그는 부동산을 기초로 엄청난 성공을 얻으며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해 정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때, 아무도 그가 2017년의 미국의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미국은 유난히도 지식인의 대접이 박한 국가중 하나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또한 미국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 해야 할까. 반대로 우리나라는 배운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은 매우 대접 받지만, 반대로 노벨상 수상은 학문과는 상대적으로 관계가 멀다고 할 수 있는, 이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하나 뿐이다. 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이 책을 읽게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아무리봐도 화이트칼라의 부동산부자, 힐러리와 다를바 없이 엘리트 계층인 그는 어떻게 힐러리와 자신을 차별화 했으며, 어떻게 그 전략이 먹혀든 것인가? 나는 아무래도 미국의 반 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에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힐러리에 대한 반감이 엘리트계층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1950년대에 일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대하여 쓰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채를 접할때, 미국인들이 공부를 잘하는, 혹은 연구에 종사하는 소위 지식인을 대할 때 유달리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눈치 챘는가? egg head, nerd. 모두 공부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 ‘배운사람’에 대한 혐오는 초기 미국의 실용적인 개척자 정신, 그리고 자수성가를 신성시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온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모두 스스로 해내는 자주적인 사람의 이미지는 모두 이 정신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 ‘자주적인 사람’은 설곳을 잃었다. 직장이나 심지어 집에서도 일은 전문화되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무력감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지식인에 대한 시선에 분노를 담기 시작했다. 이를 작가는 ‘지성의 실용성’, 전문가로서 점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가는 지식인들에 대한 선망과 증오, 무력감, 이데올로기의 지식인들에 대한 증오라고 표현 했다.
책의 저자는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미국의 사회적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에서 부터 실용주의와 평등주의가 널리퍼지며 지성을 비웃는 풍조가 생겼으며, 자수성가한 기업가(특히, 별다른 고등교육없이)들이 비즈니스로 전세계를 호령하는 19세기에 와서 반 지성주의와 계란머리(egg head, 한국어로는 범생이?정도)들에 대한 비웃음이 최고조에 달하지만, 결국 사회가 복잡해지고, 뉴딜정책이후로 비웃던 지성들이 정부에 정책상 중요입지에 서게되자 그들에 대한 비웃음이 분노와 시기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종교적인 분위기 또한 큰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언제나 비판적 이성의 반대는 감성이 아니라 맹목적 믿음이기 일쑤이다. '책은 성경한권이면 족하다'는 호전적인 반지성주의를 전개하던 복음주의자들과 이성적인 유럽과 자신 스스로를 구분하기위한 직관을 믿는 원시주의가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이룬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뿌리위에 세워진, 비판과 분석과는 거리가 먼, 자기손으로 일어난 자수성가 비즈니스인들이 반지성주의의 표면을 이룬다고 밝혔다.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반지성주의가 미국의 학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저자의 말인데, 저자는미국 학교 교육의 실패–교사의 저임금과 낮은 사회적 지위, 운동선수에 대한 과도한 숭배, 학업 성취도의 전반적 저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의 방치–가 대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한다. 확실히 고개를 주억거릴만한, 우리가 '미국 학교'하면 생각날 것들만 모아두긴 하였다. 저자는 메카시즘과 지성의 싸움도 적었지만, 이만 줄이겠다.
내가 가장 묻고싶은 점은, 그럼에도 미국은 왜 가장 많은 지성을 보유하고 있는가 이다. 책에서 읽었다시피 미국은 지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는게 옳은 표현일정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유수의 대학을 보유하고 있고, 놀라운 연구실적을 뽑아내는가? 단순히 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라고 보기엔 실적이 장대하다. 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책의 후반부에 있는데, 바로 '스푸트니크 쇼크'이다. 이 충격으로 1950년의 미국은 반지성주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지성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성에 대한 직접적인 걱정보다는 '더 많은 스푸트니크'를 만들기를 원한것이 겠지만.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이공대 선호주의가 여기서 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되는 학과만 증축,지원에 나서는 대학과 그에 휩쓸려 힘을 읽어가는 기초학문을 보고 있으면 씁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