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경멸해왔다. 행복한 사람들의 12가지 습관, 부자들의 11가지 '평범한' 습관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왠지 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진정한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은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마라와 같은 지침을 읽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문 과학적 지식을 접하고 내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또 이들 자기계발서는 책의 내용을 보편타당한 명제로 못 박는다. 읽는 이로 하여금 비판적 독서 없이 책을 맹신하게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게 만든다.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니 다른 책들과의 연계적 독서에도 실패한다.
이 책도 처음에는 그러한 부류로 다가왔다. 평이한 문장, 쉽게쉽게 넘어가는 책장, 청년의 말에 "아, 나도 저렇지."하고 끄덕이면서 철학자의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는, 그 드라마틱한 술수란. 자기개발서의 오점은 읽다보면 다 맞는 말 같은데 책을 덮고 나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이 잘 안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고 나니 무언가를 더 하고 싶었다. 백 퍼센트 이해되지 않은 아들러의 이론을 정리하고, 그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렇다.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 혹은 철학을 다룬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행복이나 부를 가질 수 있다고 꾀지 않는다. 프로이트,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생뚱맞게 등장한 그를 우리가 점점 이해하고 생활 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친절히 설명한다.
이 책과 내가 만난 경위는 좀 뜻밖이다. 스무 살 동생이 먼저 엄마, 아빠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우스웠다. 보통은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는 경우가 대다수인데다, 동생은 재수학원에서 숨가쁘게 '사육'당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생은 엄마, 아빠 각자에게 포스트잇 하나씩을 주었다. 거기엔 '이 책에 나오는 '청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오.'라고 적혀있었다. 무엇이 동생을 그리 감명깊게 한 걸까. 마침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이 있길래 나도 집어 들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대화>를 차용했다고 한다. 삐딱하지만 궁금증 많은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가 진리를 깨우치는 설정, 진부하지만 유용하다. 감정이입하기 좋다. 철학자의 입으로 아들러는 '원인론'이 아닌 '목적론'을 설파한다. 프로이트 위주의 기존 심리학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현재 내 증상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비관적 태도만을 낳을 뿐 인간의 변화가능성은 부정한다.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목적'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과거의 특정 사건에 초점을 두어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것조차 변화를 거부하려는 사람의 '목적'이 반영된 것이다.
낯간지러운 내용들은 넘어가고 내가 주목한 부분은 2, 3장의 일부. 아들러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된다'고 한다. 또 고독은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이다. (80~81) 따라서 이러한 상처와 미움, 고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에 아들러 사상의 핵심이 있다. 상처에 민감하고 칭찬을 바라는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데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정욕구'는 두 가지의 문제점을 갖는데 첫째는 부자유의 삶을 낳는다. 남들의 눈 아래 자신을 가두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사는 삶 말이다. 두번째는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에만 관심을 두는 자기중심적 삶을 만든다.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그들의 '과제'다. 이에 휘둘리는 것은 그들의 과제에 개입해 나의 과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관계가 깨지면 어떡하냐는 물음에 아들러는 인간관계는 단순히 '나와 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다른 공동체에 겹겹이 싸여져 있는 큰 개념이라고 답한다.
이 책이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20대 사이에서 왜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알 것 같다. 아들러 철학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일과 학업 둘 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무한경쟁사회에서 한국의 학생과 청년들은 자신감을 잃고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낀다. 그들에게는 나의 가치를 깨닫고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이 발행부수만큼 실제로 도움이 됐을까, 나는 원래 자존감이 그리 낮지 않아 잘은 모르겠다. 동생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