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띠이고, 2015년까지 지난 3년간 삼재였다. 운명을 믿지 않으려 애쓰지만 사주나 운세 같은 것은 언제나 알고 나면 신경쓰이게 마련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라며 당당하던 나는 지난 몇 년 간 수없이 좌절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저 견뎌왔다. 빠져 나올 듯 말 듯 지겹도록 자기혐오로 범벅이 된 좌절의 수렁을 구르며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어느 날 우울한 기분에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미움받을 용기’를 추천해주었다. 당장 서점에 가서 책을 샀고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새기며 찬찬히 읽어나갔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이론을 완전히 부정한다. 정신분석학, 심리학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방송과 책에서 심리학이라고 하면 언제나 언급되는 프로이트와 그의 이론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트라우마 이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에서 소개하는 듣도보도 못했던 심리학자 아들러란 사람은 책의 맨 첫머리에 이를 단박에 뒤엎어버린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내 의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 또한 내 의지이다. 사람이 트라우마에 일부러 빠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집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단지 집 밖으로 나가는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트라우마라는 핑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을 하는 것은 내 의지이지 과거의 트라우마는 아무 상관없다고 말한다.
나를 오래도록 괴롭힌 것 중 하나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면 각종 비리로 얼룩지고 정의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이른바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사회 모습에 화가 났다. 고위층의 부정부패와 그것에 무뎌져 반응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최저시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회사 편에 서서 오히려 나를 질책하는 상사에게도 분노가 치밀었고,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때문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이 모든 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트라우마처럼 분노 또한 인간이 지어내는 감정이다. 어떤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것은 내가 그 순간 화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는 작은 것 하나에도 분노하면서 강자 앞에선 어떠한 부당한 일도 잘 참아내는 이들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는 구절을 읽고 나자 신기하게도 화를 다스리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졌다. 그동안 힘들어했던 시간이 허망할 만큼 말이다.
언젠가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두 망쳐버렸다고 좌절해 인생도 컴퓨터 게임처럼 간단히 끝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좌절에 휩싸였다. 이전까지는 전혀 짐작도 못했던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미움받을 용기’ 속 “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는 구절을 읽은 순간 깊은 좌절의 순간이 모두 씻겨 내려가버렸다. 내 앞의 세상이 환해지고 마법처럼 용기가 생겼다. 내 인생을 결정하는 건 트라우마도,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아니다. 모든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