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젊고 유명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강력 추천한다고 해서 이 책을 구입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때문에 가장 큰 권리이자 책임인 투표와 선거 얘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반으로써의 민주주의와 그 구성원을 이루는 시민,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아주 자세히 제시되는 행동 양식과 개념들이 주로 등장한다. 민주주의와 정원이라니, 초록색 표지와 다른 책과는 다르게 조금 작은 사이즈를 보니 디자인의 많은 신경을 쓴 듯, 읽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드는 책이다. 우리는 잘 가꾼 정원을 보면 인조적이라고 여기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은 야생 넝쿨이 생겨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다. 시민이 정원사라고 보고, 땅을 개간하여 무엇을 심고 어떤 수확을 맺을 것인지를 사실상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임을 인지한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더 큰 정원안에 존재하는 유기체라고 여겨진다. 정원형 지성이라는 개념이 기계형 지성과 대비되어 등장하고 현재의 다양하고 복잡한 정치,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기계처럼 예상할 수 있는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다루듯 정원으로 접근하라고 말한다.
던바의 수에 따르면 모든 문화와 시대를 통틀어 친밀한 공동체의 규모는 최대 150명 정도하고 한다. 작은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고, 그들과 다른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네트워킹을 할 때,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질 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회가 분리되면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불공평한 것을 넘어서 건강하지 못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책에는 불평등의 수준이 높을수록 사회병리현상이 높게 나타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만, 우울증, 폭력범죄, 신생아 사망률, 공해 등 낮은 계층만의 문제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며 나아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아픈 부분이 있다면 그 곳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류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가 지지하는 trickle down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산층을 키우는 middle out 정책이며, 정부는 우리가 낸 세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부의 재순환은 피의 재순환만큼이나 경제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필요한 우리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시장의 자유를 믿고 지지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 시장에는 원래의 목적인 자유경쟁이 있는가? 경쟁의 의미는 축소되었고 엄청난 진입장벽으로 생긴 이 경제와 민주주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책은 흥미롭고 쉽게 설명되어서 읽기는 좋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읽기에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기반이 넓고 두터우며 역사가 긴 미국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또 이상적인 담론을 얘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리감이 들었다. 또 원자론적인 것에서 네트워크적인 것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동양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는데, 학연·지연·혈연을 너무 따지는 것이 문제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면 공동체성을 무조건 찬양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한 호혜’ 정책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정책에는 몇천 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집단 행동을 통해 본능적으로 형성된 강한 인식이 반영됐다…결국 친사회적인 도덕성은 그저 도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현명한 것이 된다.”
“이기심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미신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실 같은 집단에 속한 타인을 돌보도록 진화되고 선택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된다,”
이웃을 돌보고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관련 분야의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선진국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미국은 자원봉사와 자선활동의 수준이 높은 나라라는 전제가 깔린다. 선에 대한 무조건 적인 선망, 그리고 그것을 장려할 때 따라주는 시민들. 이런 나라에서 자란 건강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변화를 겪고 있는 시간인 만큼, 더 고차원적인 개념의 민주주의를 추구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