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한 쪽에 크게 나붙은 책 광고 하나를 봤다. 홍대입구역의 복닥거림에 대비되는 담담한 하늘색 표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 광고였다. 인기스타들의 얼굴이 벽을 가득 메운 홍대입구역에 다소 이질적인 '책' 광고는 과연 눈에 띄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듯 <바깥은 여름>을 처음 접하며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이 책이 요즘 잘 나가는 책이구나
그러나 대개 사람들이 우후죽순 좇는 '유행'이란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주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왜, 처음엔 단지 유행이라는 이유로 구매를 꺼렸지만 결국 '롱패딩'을 하나씩 장만했던 지난 겨울처럼 말이다. <바깥은 여름> 역시 처음엔 내게 '베스트셀러' 그 이상의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겨울철 만년 친구가 되어버린 롱패딩처럼 둘도 없을 '인생 작품'으로 가슴 깊이 남게 됐다.
<바깥은 여름>을 다시 접한 것은 공강 시간의 도서관에서였다. 이미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가장자리가 둥글어진 모습이었다. 유명한 스타를 마주하듯 알게 모르게 이미 익숙해져버린 느낌이었고, '오래 눈여겨 봐왔다는' 이유를 대며 새침하게 책을 집어든 기억이 난다. 가장 먼저 목차를 보니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단편 소설은 집중하기 힘들다며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은 채, 딱 한 편만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딱 한 편의 이야기를 읽고, 책을 대출하게 됐다.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각각 소재도, 인물도 모두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였다. 인물간의 연계도 없었다. 그러나 소설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분위기는 그것만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호흡을 함께 하는 느낌이 들게했다. 모르긴해도, 이질적인 사물을 배치함으로써 하나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예술 기법이 있다면 <바깥은 여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일관된 분위기와 나아가 소설 전체의 메시지가 담긴 대화를 발췌했다.
안녕
반가워요
나는 행복해요
덕분에 저도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슬퍼요
제가 이해하는 삶이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랍니다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이 대화엔 <바깥은 여름>의 전반적 느낌과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대화는 일곱 번째 이야기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실린 내용으로,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자가 그 남편이 생전 애용하던 스마트폰 음성인식 프로그램과 대화를 시도하는 부분이다. 하필 처음으로 건넨 말이 ‘행복하다’라는 거짓이었고 곧이어 고백하듯 ‘슬프다’는 진심을 내뱉는다. 이에 대해 음성인식 프로그램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라는 입력된 삶의 정의를 산출해내고, 앞의 여섯 이야기의 읽은 독자라면 이 말에 그저 공감하게 된다. <바깥은 여름>은, 아름답다면 아름답게 보일 무언가로부터 멀어져 홀로 슬픈 내면을 지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차’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가쁘게 돌아가는 바깥의 활기 같은 것들에 대비되어 내면은 ‘그대로 가만히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누구나 있더라고 생각했다.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그 온도차의 서늘함에 적막한 날이 비단 누군가의 하루일뿐일까. 쨍한 여름날처럼 활기로 가득한 바깥마저 어쩌면 슬프지만 ‘행복하다’ 외치는 왕왕거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초록이 아름다운 여름을 밖에서 우두커니 지켜보는 겨울 깊은 곳의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넌지시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