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성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 소설이다. 게이 남편 무츠키, 알코올 중독자 아내 쇼코, 그리고 무츠키의 대학생 애인인 곤. 이렇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츠키와 쇼코는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였는데, 이 둘의 관계가 깊은 감정 교류를 바탕으로 형성된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조금은 특이하고 불안정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발 맞추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 사랑스러운 세 사람이었다.
2장 파란 귀신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츠키의 대사이다.)
‘목욕을 한 후에 마시는 생수는 꿈처럼 맛있다. 청결한 물이 몸 구석구석까지 피돌듯 돌아, 손톱 끝까지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껏 읽었던 수많은 소설 속 문구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덕분에 나도 샤워 후, 시원한 생수를 쭉 들이키는 습관이 생겼는데, 꼭 차가운 물이 혈관을 타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끝까지 닿으며 퍼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일상을 표현한 문구들은 이렇듯 맑고 청아하다. 소설 자체도 그렇다. 서사 자체가 스펙타클하지는 않다. 말 그대로 소품(小品)이다. 하지만 뭐든 장대하게 그려지고 소비되는 요즈음이다. 블록버스터, 초호화 캐스팅, 어마무시한 예산을 들여 탄생되는 작품들 속에서, 이 소설은 작고 사소한 얘기라서 오히려 더 소중하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특이하거나 특별하다고 여긴다. 예전보다야 많이 가시화가 된 편이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을 ‘정상성’을 잃은, 확보하지 못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나는 2년 전부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지지를 표명하며 참석하기 시작했다. 매년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어마어마하게 모인 사람들을 보며, ‘대체 이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모인거야?’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한 신문사로부터 인터뷰 참여 요청을 받았는데, 그 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은 지금 여기 있는 거에요.’ 특이하고, 별나고, 보통과 다른 그 사람들은 사실 우리 일상의 어디에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퀴어는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이며, 퀴어한 것은 사실은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더욱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느꼈다. ‘정상적’이지 않은 등장인물이 이 작품을 더욱 더 ‘정상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소품(小品)’으로서의 특질을 강화시킨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전근대적인 가족 제도가 영향력을 점점 잃고 있다. 가족이 기존의 형태에서 보다 다양한 형태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성별이분법적 질서 아래에서 이성애적 연애만을 답습하고, 단 한 번도 다자간의 연애를 상상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츠키와 쇼코의 관계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지는 않다. 전 인류가 이성애자이고, 모노아모리(폴리아모리, 다자 연애의 반대말)인 것은 아니다. 아직 생소하지만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츠키와 쇼코가 그저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결혼했다는 점이 좋았다. 둘의 결혼 생활은 분명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서로에게 헌신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부부의 롤이 아니었다. 무츠키는 쇼코의, 그리고 쇼코는 무츠키의, 그리고 곤의, 나약하고 아픈 부분을 보듬어 주고 ‘함께’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각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말이 그러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고 본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기존의 틀을 깨면서 가능해진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나는 꼭 세 사람이 함께라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사랑스러운 매일이 일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