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에 대중 예술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정해진 영역 안에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었던 기존의 다른 수업들과는 달리, 대중 예술의 이해 수업은 매 시간마다 영화, 음악, 연극, 애니메이션 등의 예술적 장르에 대해 배우고, 관련된 동영상 자료를 배울 수 있는 참된 공부 시간이었다. 비록 노력한 것에 비해 학점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 수업 덕분에 한 학기 생활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바쁜 의대생이지만 예술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전시회나 예술가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뭉크, 반 고흐, 폴 고갱, 프리다 칼로, 마네, 모네, 에드가 드가, 피카소 등 중학교 시절 미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외웠던 기억이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하지만 그 당시 암기하기 위한 공부를 할 뿐이어서, 사람과 대표작을 연결시킬 뿐, 그 사람이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작품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먼저 반 고흐이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반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사람,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작가 이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유독 노란 빛으로 가득한 것은 그 이유가 있었다. 당시 파리를 뒤흔든 압생트라는 술은 50~70도 가까이 되는 고량주였다. 예술가들 역시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이 술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반 고흐 역시 이 술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다만 압생트에 중독될 시, 눈 앞이 누렇게 보이는 '황시증'에 걸릴 수 있었는데, 고흐는 황시증에 걸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렸기 때문에, 고흐의 그림 대다수가 누렇다고 한다. 또한 술 중독으로 정신병에 걸려,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비극적 사태까지 발생했다. 예나 지금이나 술이 문제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알게 되니, 반 고흐라는 사람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환상 속의 비극적 천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고, 그 해결방법으로 잘못된 술이라는 길을 선택한, 한 사람으로 보였다. 교양이 쌓여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작품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잘 표현했다고만 생각했지, 그가 왜 작품의 주제로 발레리나를 선택했는지는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 배경에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문제가 있었다. 발레리나가 되면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아랫 계급의 여성들은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무대 위 화려한 모습과 달리, 무대 밖에는 어린 소녀들의 치열한 경쟁과 부담감이 있었다. 또한 당시 돈 많은 양반들은 이 어린 소녀들을 지목하여 하룻밤 자기도 하였는데, 발레리나 소녀들은 이를 통해 스폰서를 갖게 되는 불합리한 구조에 놓여 있었다. 독신론자였던 드가는 이 어린 소녀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작품들을 그렸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자신만의 예술로 표현한 드가. 이 분도 우리네 김수영 시인, 신동엽 시인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저항한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닐까.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답다를 넘어서서, 작품의 기저에 있는 그의 애뜻한 마음을 알게 되어 좋았다. 예술가는 시대와 분리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술가가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여, 오늘날 대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시간이 흘러가면서, 예술가들의 화풍 역시 바뀐다. 예술가들이 모인 도시도 달라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가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 시대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다 매한가지인 것이 아닐까. 현대를 살아가는 내게, 그들이 말해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후손으로서의 나는 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