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어릴 적 읽은 만화로 인해 거리감 없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의 두께가 꽤 되며 이름이
어렵기 때문에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게 되는 불상사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본래
만화로 볼 땐 인물들의 생김새를 통해 구별했지만 긴 설명과 미술작품만으론 신화를 완벽히 이해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다들 한 번쯤은 읽어봤을 신화를 자세히 설명하기에 점차 읽는 것이 쉽게 느껴졌고 다양한 해석과 가설을 논하여 다방면으로 비평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했든 시각자료를 많이 활용해서인지 신화를 창의적으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도 두께만큼이나 많았지만 솔직한 리뷰를
위해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소개할까 한다. 그전에 이 책의 구성을 설명하자면 책은 비슷한
메시지를 내포하는 이야기들을 같은 장에 포함시켰으며 몇몇 이야기들은 같은 부제에 포함해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예시로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라는 장이 눈에 띄었다. 그 두 이야기는 자연스레 연결되지만 두 주인공이 다르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 또는 재앙’이라는 공통된 맥락 덕분에 같이 서술된다. 먼저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만
누릴 수 있던 권리인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이에 화가 난 제우스는 그를 코카서스 산중에 결박하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내렸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밤새 재생됐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간의 회복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대목이다.
화가 덜 풀린 제우스는 불을 갖게 된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고자
판도라를 보낸다. 흔히 ‘판도라의 상자’라는 표현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신화에 의하면 판도라는
상자가 아니라 단지를 갖고 지상으로 내려왔으며 호기심을 참지 못해 단지의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단지 안에서 인간에게 안 좋은 질병, 고통, 질투심, 복수심 등이 나와 흩어졌다고 한다. 판도라가 도로 뚜껑을 덮어 단지
안에는 딱 한 가지 ‘희망’만이 남았다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희망만 버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설명한다. 책에 의하면 다른 설도 있다는데, 프로메테우스로 인해 인간에게 벌하려고
판도라를 인간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보냈다는 설이다. 여기서 판도라의 단지 안에는
신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담겨있었고 판도라의 실수로 뚜껑이 열려 다 날아가고 희망만이 남겨졌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이 설이 더 신빙성 있다 주장하는데, 비록 이 설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 역시 이 추론이
더 타당하다 생각한다.
이렇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듯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외모지상주의인데, 특히 여인의 미의 기준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황금
사과의 신화를 다룰 때 헤라,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테나는 사과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며 양치기 파리스에게
심판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때 제우스는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고르라고 명한다. 여신이 가져야 할 덕목, 지혜, 인성이 아닌 오로지 아름다운 외모만을 평가하라니, 요즘 사회에서 외모만을 중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파리스는 권력과 부, 전쟁에서의
명예와 명성을 마다한 체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그 이후로 역사상 가장 큰 전쟁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트로이 전쟁 역시 아름다운 여인을 빼앗겼단 이유로 시작됐으니 창피하기 그지없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다프네의 아름다움 때문에 아폴론으로부터 달아나게 되었고 다프네가 결국 월계수로 변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고대 사람들의 상상력과 지혜가
돋보인다고 느꼈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이야기는 물론 교훈을 주는 메시지와 적나라한 사회 반영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욱 특별히 만든 것 같다. 과연 나는 어떤 신이었을지 상상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