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는 나에게 왜인지 모르게 신비롭고 몽환적인 작가이다. 그를 처음 마주친 때는 3년 전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음침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흑백 사진을 본 날이다. 순간 오싹하며 무엇인가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까지 들었는데, 그 무엇인지 모를 찜찜함때문에 당시에는 그 사진이 붙어있는 책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와도,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은, 그 소름끼치는 미소와 함께, 나의 뇌리에 정확히 박혀있었다. 그리고 혜화역1번출구에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의 홍보 전광판이 붙자 기억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해서 나는 그 음침한 표지를 가진 책을 결국 집어들고 만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정말 직설적이다. 거북하리만큼 구체적인 묘사와 전혀 예상하지 못 하는 물체들의 조합은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준다. 이 느낌들을 글로 묘사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의 사진을 보고 받은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책 안에 있는 수많은 단편들, 반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것 부터 약 20페이지 분량의 단편들까지, 조금의 여백도 없이 빽빽하게 쓰인 글자들과 마치 영상을 보는것 처럼 세밀한 설명이 하나하나 독특하다.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멸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편집임과 동시에, 몽환적인 내용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몽롱한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이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이 책의 가장 첫번째 단편소설, '변신'이다. 한 가정을 먹여살리다싶이 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벌레로 변한 채 잠에서 깬다. 일어나자마자 피부로 느껴지는 단단한 이질감으로 그는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 한다. 책을 읽으려니 침대 위에서 다리들을 흔들며 발버둥치는 무지막지하게 큰 바퀴벌레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거북했을 때는 그레고르의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벌레로 변한 그에게 사과를 던졌을 때 이다. 그레고르의 몸에는 한 조각의 사과가 박힌다. 그 때, 벌레로서 그레고르가 느낄 아픔이 너무나도 생생히 묘사되어있다. "그레고르는 질질 끌며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꼼짝달싹 못 하게 못박혀 있는 느낌이 들며 모든 감각이 완전히 혼란된 채 몸을 쭉 뻗고 말았다." 가정을 온전히 책임지던 가장으로부터 한 마리의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순된 처지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나와 벌레(그레고르)를 동일시하게 된 첫번째 순간이다. 남이 아닌 가족들이, 그를 힌 마리의 벌레가 아닌 내면의 인간으로 봐줄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곧, 인간의 형상에서 순식간에 벌레의 모습으로 변신해버린 그를 ,가족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어야 했는가 라는 의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다. 그렇게 그는 생각보다 쉽게 죽는다. 어쩌면 다른 여느 해충들보다 연약하고 의미없는 존재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에 가족들은 감사한다. 가정부로부터 가차없이 치워지는, 쓰레받기가 그의 마지막 안식처라니, 허무했다. 그토록 쉽게 추락하고, 가볍게 치부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 한 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자신이 어찌하여 벌레가 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배제한 채, 더이상 인간이 아님에도 가장 인간적인 걱정을 했던 그레고르에게 돌아온 것은 지극히 소외된 삶과 멸시,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아쉬운 처사이다. 지극히 절망적인 그와 그의 가족의 빛깔이 회색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다른 단편소설들에서도 "변신"과 유사하게 인간의 하찮음, 존재의 이유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때로는 거북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너무나도 자세히 내보이는 그의 문체에, 그 덤덤함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