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단명한 작가들의 특징인 것 같다. 카뮈, 김유정, 그리고 이번에 리뷰를 할 프란츠 카프카도 그렇다. 그들이 쓴 작품의 이름도 이름이지만 작가의 이름이 문학의 역사에 크게 남는다. 아마도 그들이 주는 짧고 강렬한 임팩트와 충격 다른 작가들에게 주는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도 그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글에서 수십 차례 언급되거나 인용되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준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변신」이 아닐까 한다. 변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난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리 비슷한 것으로 변해서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점점 버림받고 마지막으로 점점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감정도 흐릿해져가는 주인공을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여동생마저 주인공을 외면하고 죽어가는 주인공을 버려둔 채 가족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집을 나가 다른 곳을 찾아간다.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제의식과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캐치하기가 쉬웠던 것이었다. 카프카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했던 건 내 생각에 ‘인간의 본질’ 즉, 인간은 무엇으로서 존재하는가? 인간이라는 다른 생명체들과 구별되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이 표현해내는 벌레로서의 일상과 물건을 만지거나 먹을 때의 촉감과 움직일 때의 느낌, 본인의 몸에 대한 위화감이 매우 생생하고 독자들이 충분히 본인들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짜여져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으로서 사고할 수 있지만 겉모습이 인간과 다르고(벌레처럼 보이는) 근처의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는(괴상한 음성정도를 낼 수 있음)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 특히 본인의 삶에서 가장 아끼던 가족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에 있다. 책에서 가족들은 정말 시쳇말로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주인공에게 가한다. 외양이 달라졌고 말도 못한다는 이유로 빗자루 같은 도구로 맞기도 한다. 보통 우리는 사람의 가치는 외양이 아니라 본성에 있다고, 그 사람에 인성과 인격에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외양과 언어 때문에 인간이라는 취급을 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외양이 인간 같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인가? 그것만으로 우리는 인간이라고 정의되는가? 우리가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겪어 일그러진 얼굴과 실어증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나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이러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마 이게 카프카가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카프카가 변신의 집필을 시작한 1912년은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제국주의의 욕망을 드러낸 서구열강들은 식민지 탈취에 심취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공산품과 사치품에 열중하며 인간 개인이 고립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고립되기는 카프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독일계 유태인. 게다가 그가 앓게 된 폐결핵 때문에 아마 그는 평생을 본인을 이방인이라 생각하며, 본인을 변신에서 파리로 변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고독에 잠겼을 것이다. 고독했던 카프카가 20세기 초에 했던 고민은 21세기 초인 지금 우리도 겪고 있고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들의 범람, 멀어지는 이웃과 가족들, 인터넷으로만 연결되는 사람들과 버림받는 주류에서 벗어난 소외된 사람들. 하지만 지금 20세기 초의 청년 카프카처럼 희미해진 인간 존재에 대해서 고뇌하고 사색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보다 너무나도 적을 것이다. 모두가 바쁘다는 핑계로 철학적인 사색이나 문학을 무시하는 세태에서 결코 21세기의 카프카는 탄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아마 「변신」을 통해서 이러한 미래를 걱정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