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은 안 갔으면 좋겠다,’ ‘갑자기 학교가 부서져서 안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야 하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가기 싫어서 침대에서 좀 더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자기가 벌레가 되었음에도 출근 걱정부터 한다. 자신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온 상사에게 출근할 수 있다고 기다려 달라고
한다. 몸에 이상함을 느끼면 몸이 왜 이상한지 걱정부터 할 것이지, 일에
늦어서 돈을 못 받을 걱정부터 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사실 가족들이 자신을 배척하고
방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레고르는 계속해서 가족들을 걱정하는데, 꽤나 답답했다. 어리석게도 착하다는 말이 이런 데서 쓰이는 것인지, 그레고르는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들을 계속 우선시했다. 그레고르는 부모님의 빚을 갚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픈
와중에도 출근할 생각만 하고 있으나, 부모님은 그 몰래 여윳돈을 모아놨었고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자신들이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들이 일할 생각은 안하고 그레고르에게 의존하다가 더 이상 그럴 수 없자,
그제서야 돈을 어떻게 벌지 생각하고 일하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돈을 벌지 못하자 그의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이제 그들에게 그는 단지 흉측하고 거추장스러운 벌레일
뿐이다. 여동생도 처음에는 그레고르의 식사를 챙겨주고 어떤 음식을 더 잘 먹는지 챙겨줬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서 그레고르가 먹던 말던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가족들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벌레로 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레고르가 왜 벌레로 변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의사를 부르지도 않았다. 이처럼 가족이란 단체가 이익관계로 유지된다면
꽤나 슬픈 일일 것이다. 거친 세상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하는데, 집에 있는 가족들마저 자신이 이익이 되지 못하면 버리는 상황이라니.
이
책의 작가인 카프카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주인공이 새로움과 낯선 것들 사이에서 동요하며 자아를 찾으려는 구조를 가진다. 이런 문학은 독자에게 현실이지만 자신이 사는 현실과는 다른 낯섦과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인 ‘유형지에서’에서는
장교가 오래되고 잘못된 사형기계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집착을 한다. 장교의 소외되고 왜곡된 자아가 계속해서
기자와 독자들에게 주입되다가, 장교가 자기가 사랑해 마지않던 사형기계에 의해 죽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결국 장교의 뜻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는 세상에서 소외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변신’에서도 이와 같은 구조를 띤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가족들과 열심히 소통해보려 하지만 점점 생각도 사람보다는 벌레에 가까워지고 끝끝내 가족들과
통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들은
오랜만에 교외로 나갔으며 밝은 미래를 생각했고 새로운 집으로도 이사 가기로 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찌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도 아니어서 내면의 추악함을 들여 보인 기분이다. 착하고
선한 것을 쫓고 있지만 결국 나도 비참한 상황이 되면, 저들과 다를 바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게 두렵다. 자아를 찾기 못해 방황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모습이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서 읽고 나면 불쾌한 기분이 드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