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 이래 문학으로 나를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혹사한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가 처음이다. 읽는 사람도 이렇게나 힘든데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등장인물 개개인의 내면에 더욱 깊이 고찰하고 이입해야하는 창조자는 나보다도
힘들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정신적 고통을 그는 어떻게 감내한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다. 작가의 머리속이 궁금하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하루아침에 거대한 바퀴벌레로 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레고르는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이었으나 벌레가 되어 말하지도 일하지도 못하게 되자 냉랭한 대우를 받게 된다. 심지어 그레고르는 가족에 대한 헌신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막상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 내몰리자 가족들은 그레고르 없이도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결국 등에 사과가 박혀
고통스럽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은 그레고르의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이사를 간다.
이 소설에는 역경만 있을 뿐 역경의 원인 및 극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인과응보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가혹한 역경은 독자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어떠한 출구도 존재하지 않는 밀폐된 방처럼 상하전후좌우
꽉막힌 역경은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인간의 소외와 가치 상실을 비판하기 위한 소설인 듯 한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라서 주인공이 받는 고통은 절절하게 느껴지지만 가족들의 냉대가 마냥 악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 바퀴벌레가 되었다고 해서 그에 대한 동정보다 혐오를
앞세우는 것은 분명히 무정한 행태지만, 생각해보라, 사람만한
바퀴벌레다. 평범한 사람이 다정해져 봤자 얼마나 다정해질 수 있겠는가.
내가 거대한 바퀴벌레가 된다면 인적 드문 숲 속으로 떠날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까지 살고 싶지도 않다. 가장 무정한
사람은 아버지도 여동생도 어머니도 하숙인도 하녀도 아닌 이 소설을 쓴 카프카로 보인다. 아.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어떤 사람은 비극적 요소가 극대화된 이 소설을 통해서 현대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만약 내가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소설을 쓴다면 독자 차원에서 납득할 수 있는
역경을 주인공에게 부여해야겠다. 물론 언젠가 불특정 다수에게 합법적으로 정신 고문을 가하고 싶어진다면
카프카를 본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