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에 묘사된 가족들의 모습은 냉혹하다. 가족의 생계를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장 그레고르가 한 순간 흉측한 모습의 벌레로 변해버리자, 가족들은 지금까지 그의 노고는 싹 잊어버린 채 그의 겉모습만을 가지고 그를 판단하려 든다. 그리고 끝내는 그의 죽음마저도 방관한다. 책 전반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저자 카프카의 생애처럼 시종일관 암울하고, 어둡다.
처음에는 나름 소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썼다. 가장이 가족으로부터 급격하게 소외된다는 전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려면 구성원 중 한명을 가족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소설적 장치가 분명 필요하긴 했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람이 하루 아침에 벌레가 되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수 있는건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연성이 부족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의 장르는 소설이고, 따라서 뭐 이런 데까지 개연성 운운하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은 지금까지도 카프카의 최고 걸작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작가가 의도했던 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소설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카프카는 어렸을 때부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청소년 시기부터 이어져 온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과 자기혐오의 감정이 '변신'에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면 끊임없이 '실존주의' 에 대해 탐구해왔던 그의 정수가 드러나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점도 이해가 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불안해서 한 순간 다른 존재(이 책에서는 벌레)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간이 꼭 해야하는 일,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생계 책임지기와 노동 등의 활동이 과연 그 인간을 진정으로 가치있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서 사회의 공동체의 부조리성, 인간의 무근본성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탐색한다는 의미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은 관계이지만, 나도 지금까지 아빠와 감정의 골이 있었고, 그 골이 성인이 된 지금은 더 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었다. 아빠의 직업 특성상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런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둘 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편이라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꺼내어놓으려고 하지 않아서 관계에 진전이 없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항상 가장으로서의 권위만 강조하고 나머지 집안 식구들 위에 군림하려드는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에 질려 이야기하기를 꺼려왔었다. 아빠가 단순히 우리의 '생계'만 책임져주는 사람이라면, 아빠가 옆에 있지 않아도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거나, 일을 조금 더 하면 행복하고도 여유로운 가정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0여년 동안 다른 곳 바라보지 않고 오직 가족(정확히 말하면 가족의 생계)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아빠가 생각하면 가히 충격을 받을만한 생각이지만. 아마 그레고르의 감정도 아빠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자들은 아마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가족들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하던 상황이, 그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나머지가 상황을 타개할 노력에 나서게 함으로서 한 가정의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이것이 꼭 지금까지 가정을 위해 희생해왔던 사람의 죽음(또는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부분은 분명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저자 카프카는 저 '희생자'가 누가될지 모르는 섬뜩한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줌으로서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카프카의 목표가 누구든 자신이 '그레고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그는 성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