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소설에는 인간 실존의 불안과 고독이 서려 있다. 아마도 카프카 본인이 유대계 독일인으로서 겪은 고독감이 그의 글에 녹아들어 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변신(Die Verwandlung)』 또한 인간 존재의 불안과 사람들 간의 단절을 주제로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레고르가 눈을 뜨자마자 직면하게 된 믿을 수 없는 ‘변신’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변신한 형상인 벌레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까지 하다. 카프카는 이 벌레의 배의 질감, 여러 개의 다리 등과 같은 외양과 더불어 그레고르가 주체가 되는 움직임을 세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직접 그 벌레의 탈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구상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까지도 엿볼 수 있다. 간혹 그 벌레가 바퀴벌레라고 번역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카프카가 책의 출판 시에 그 벌레는 결코 바퀴벌레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도 하고, 딱정벌레와 점액질 등의 묘사만 봐도 그 벌레가 바퀴벌레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이렇게 카프카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흉측한 벌레로 그레고르를 변신시킨 이유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책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본 후에 논하도록 할 것이다.
그레고르는 5년 동안이나 아프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 나가는 외판원이다. 그는 벌레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보고도 7시가 되었다는 사실에 매장 출근부터 걱정한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지배인이 집으로 찾아오고 아버지는 초조해하며 그레고르의 방문을 열려고 한다. 일부 독자들은 그레고르의 변신이 그 자신의 억눌려 왔던 소망을 나타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인과 아버지에 대항하고 자유롭고 싶은 그의 마음이 드러난 형태가 그 벌레라는 것이다. 매장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다가도 집으로 직접 찾아온 지배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레고르가 처음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어 침대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데에 성공하는 장면은 이러한 해석에 설득력을 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둘에 국한된 소망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벌레 몸을 다루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누가 거들어주러 왔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정말 도와달라고 할 것인지 자조적으로 웃는다. 이에서 그레고르 가족의 실체, 단절된 가족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그나마 아들이 아픈 것이라며 그레고르를 변호하지만 여동생인 그레테는 오빠가 지배인을 방 안에 들이지 않고 반항하다가 매장에서 쫓겨나고 가족이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할까 걱정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앞서 언급한 인간성의 상실은 오히려 아버지와 여동생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레고르가 그들을 대면하기 전에 누군가 자신을 눈 여겨 봤다면 자신이 아침에 이러한 모습이 될 것을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며 말하는 장면에서 가족 간 단절 사태는 심각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와중에도 그레고르는 자신이 아프다고 해서 집에만 누워있지 않고 매장에 나가 일할 생각이 있었음을 밝히면서 지배인에게 부모님을 나무라지 말라고 말하거나, 후에 가족들이 자신을 하찮은 짐승 취급할 때에도 여전히 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소망을 고수한다. 여기에서 그레고르는 자신의 흉측한 외면과는 대비되는 배려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나중에 그레고르를 더 딱한 주인공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배려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그는 벌레로서의 본능에 사로잡히는 충동을 더 자주 느낀다.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은 그레고르 자신만의 문제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지배인이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보고 도망 가버리고 가족들 역시 절망하며 그를 직접 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가족들의 태도에서 그레고르를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고는 여동생이 챙겨주는 썩은 음식만 맛있게 먹어 치운다. 결국 그레고르의 인간성이 상실되는 데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다. 가족들의 냉정한 태도는 경제적 문제, 돈 때문에 기인한 것이다. 이는 소설 전반 줄거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첫날부터 그의 아버지는 현재 그들의 재산 상태부터 논한다. 그리고 그 가족회의에서 사실은 그가 그레고르로부터 파산 시 남은 재산을 숨기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레고르는 어찌나 가족들의 경제적 생계를 신경 쓰는지 그 사실을 알고서 배신감보다는 가족들이 그래도 경제적 버팀목이 있음에 안심부터 느낀다. 카프카는 그레고르와 아버지가 서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내용을 서술함으로써 가족 간 소통의 단절을 꾸준히 드러낸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들과 단절된 채로 지내오던 그레고르가 그러면서도 어떻게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계속해서 가족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믿거나 상처를 입어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게 되었음에도 충분히 자고 충분히 쉰 느낌을 얻었다는 그레고르를 보고 이해가 갔다. 그는 계속해서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느라 가족들과 소통하지 못했고 일에 쫓기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그레고르를 가족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여동생마저 그레고르가 안정감을 느끼는 장롱을 그의 방에서 꺼내어 치워버린다. 이내 그레고르가 옛날 학창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한 상인으로서 사용해 와서 바닥에 뿌리 박혀버린 책상까지도 끄집어내어 치워버린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말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레고르라는 사람 자체를 모른다.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이 담겨온 사물까지도 모두 치워버림으로써 경제력을 상실한 그레고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카프카의 『변신』의 참된 주제는 당시 경제력을 잃은 가장의 지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 실존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노동력을 착취해내고 부(富)만이 인정받는 사회의 모습은 한 개인의 뿌리가 되는 가정에까지 스며든다. 부와 명예만을 좇아 정해진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미 인간성은 사라져가고 있다. 경제력을 잃자마자 가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 그레고르의 처지는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무능한 가장이라고 무시당하고 자신의 자리마저 빼앗겨버리는 한편,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만은 가득하여 어떻게 해서든 인정받으려 하는 한 개인 말이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끝내 그와 소통하지 못하고 심지어 벌레가 된 모습을 들킨 후 그레고르가 그레테로부터 처음으로 들은 말은 그녀가 주먹을 들고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한 위협이다. 이 외에도 가족들로부터 받는 직접적인 행동 등은 깨진 유리 병 조각이나 사과에 맞는 것이 전부이다.
이러한 주제는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취직한 이후에 더욱 명확해진다. 그는 집에 들어와서도 사환 제복을 계속 입은 채 생활하며 안락의자에서 자신을 재우기 위해 그의 부인과 딸이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받드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인생이로구나, 이것이 내 옛 시절의 평화로구나!’ 하며 뿌듯해한다. 그레고르를 따라 지팡이를 짚으며 산책을 나가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경제력을 되찾자 의기양양해져서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말만 듣게 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사환 제복을 입고 그저 그의 뒤를 쫓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도망치느라 숨이 차고 힘들다. 이로써 경제력을 되찾은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영광을 되찾고 집안을 거느린다. 물론 어머니와 그레테 역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레고르만 모든 경제 활동을 도맡아 하게 한 이유는 모든 짐을 그에게 떠맡기고 편하게 살고자 했던 그들의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레고르 덕분에 이때까지 편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진 것이었다. 가정 경제난의 원인은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벌레 탓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그레고르는 여동생의 계획으로 죽게 되고 만다. 그레테는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만일 벌레가 정말 그레고르라면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서 진작 제 발로 나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그레고르가 가족들을 배려해서 천으로 자신을 가리고 구석에 웅크리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의 의도를 잊어버렸거나 애초에 알지 못했다. 그레고르는 그가 가진 가족을 향한 책임감과 배려심의 깊이만큼 가족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나가지 않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부모님도 그레테의 주장을 직접 확인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레고르를 외면하려는 듯 그레테의 의견에 동의한다. 가족에게 끝까지 인정받지 못해 쓸쓸하고 하녀에 의해 치워지는 등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레고르의 뒤로는 홀가분해진 돈독한 사이의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레고르의 희생이 있고 난 뒤에야 가족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직장을 알게 되고 사실 그들의 형편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레고르는 잊은 지 오래이다. 어쩌면 이미 그가 벌레로 변해버린 순간부터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레고르를 위해 제시되었던 유일한 해결책인 이사 문제가 실은 그렇게 강력히 반대할 만큼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죽은 그레고르도 알지 못하고 독자들만이 그 억울한 죽음에 더 안타까워한다. 가족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방에 잠시 들어가 조금 울고 나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던 하숙생들을 내쫓는다. 그들이 울면서 나눴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직장에 관한 이야기도 결근계를 쓰면서도 나누지 않았고 여행을 가는 도중에 나누게 된 것이었는데,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운 것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무 이야기도 안 했거나, 그 동안 너무 힘들었다는 토로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독자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그레고르의 인간성이 상실되었던 것인가, 아니면 가족들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가족들이 이미 잃어버렸던 것인가와 같은 문제 의식을 제시하며 카프카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실존적으로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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