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
작성일 2018-11-17
오거서
추천도서 백선에 있는 책들의 제목만을 대충 훑어보면 간혹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이 왜
여기 있지?’ 돌이켜 보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엔 어리석게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 봤을 법한 책이라고, 또 누구나 이미 알만한
책이라고 무심결에 일부 도서들을 무시했던 것 같다. 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고 항상 새롭다는 말을 하곤 한다. 책 한권도
억지로 읽던 어릴 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함을
느낀다.
언급한 두 가지 사례에 모두 해당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이 책은 동화로도 나올만큼 대중성이 있기도 하고,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엄청난 의미를 가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어린 아이들도 읽기 쉽게 편집이 잘 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법적 나이로써 성인이 된 후 다시 책을 읽어보니 사실은 상당히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도서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그 후 발생하는 그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변신한 그의 모습이 벌레, 해충 등으로 묘사된다. 사실 나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한 것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묘사하고자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느낀점에 옳고 그름이 없다고는 하지만, 문득 내 해석과 작가의 의도가 맞아떨어질지 궁금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며 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해설을 읽어보게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실존주의, 실존적 불안과 같은 키워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정도로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런 해석에 내 감상을 끼워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작가가 이 책을 내며 출판사에 전한 말을 보고 내 해석이
어느정도 맞았음을 깨닫고 기뻤다. 카프카는 발행소로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요청을 하였다고 한다. “곤충 그 자체를 그리지 마시오. 멀리서도 모습을 보여선 안 됩니다.” 카프카도 어쩌면 나처럼 사람에서 벌레로의 물리적인 변신보다는 사람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는 정신적, 기능적 변신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안을 힘들게 일하며 부양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무리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점점 몸도 마음도 쇠약해졌고, 결국에는 침대에 앓아 눕게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절망적이게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건강 때문에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가족을 위해 직장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혹은 극단적으로,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사람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의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당연히 처음에는 소중한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도 곧 지쳐가고,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계속해서 그를 간호해야 하는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약없이 지출만 해야할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소중한 가족인데 이제와서 포기하고 그를 버려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해버릴 것이다. 이제
겉으로는 그를 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할 것이다. 종국에는 그를 완전히 잊고, 버리며, 원래 없었다는 듯이 다시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상상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과 너무 일관된다는
게 정말 안타까웠다. 소설에서도 가족들은 해충이 되어버린 그레고리 잠자를 처음에는 정성껏 간호한다. 그러다가 결국 가족들은 지쳐가고, 잠자를 간호하는 데 소홀해진다. 잠자가 벽을 타고 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며, 그가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방 안의 가구를 치워버린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사실은 잠자의
방을 창고로 쓰기 위한 준비였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잠자는 점점 외로움을 느끼고 가족들마저 그를 외면해버리자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책이 일찍이 대중화된 게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요즘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뉴스에서 자주 들려온다. 가족
간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한다. 혐오주의가 가족 사이에까지
번져버린 지금 사회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