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의 이야기의 중심은 여성이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재앙을 가지고 오는 것도 여성, 그걸 막으려고 노력하는 책사도 여성, 미쳐버린 왕을 대신해서 나라를 이끌고 새 군주를 앉히는 자도 여성, 그리고 멸망해버린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여성이다. 그 과정에 남성이 주인공으로 앉을 자리는 없다. 남자들의 역할은 한결같다. 보테의 아름다움에 홀려 미쳐버리거나 자신의 작은 그릇을 깨닫는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보테의 태도가 바뀌면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테가 어리석었을 때, 그리고 도망만 다니던 시절에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성적으로 해석하기에 급급했고 모두가 그녀를 안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고 그녀 자신부터가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에서 해방되자 남자들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전에 읽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남자들은 여성을 창녀 혹은 성녀로 받아들일 줄 밖에 모른다고 한 것처럼 그들은 아름다움을 성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숭배하거나 둘 중 한가지 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아름다움을 벗어나 여성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여성들은 다른 책에서 흔히 묘사하는 것처럼 혹은 이 책의 남자들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창녀 혹은 성녀가 아니다. 보테는 다른 책에서는 보통 남자 주인공이 성장하지만 보테에서는 그녀가 어리석은 인간에서 지혜롭고 자신의 외모에서 해방된 인간으로 성장해나간다. 클로딘 공주는 시작부터 요정들이 남자아이를 축복하기 위해 주는 것들은 받았다. 명민한 지혜, 독립적인 정신, 자연스러운 위엄. 이런 것들이 남자아이를 축복하기 위해서만 내려진다는 사실도 매우 화가 나지만 어쨌든 공주는 이런 것들을 받아 왕보다도 현명하고 위엄 있는 군주의 자질을 지닌 훌륭한 책사의 역할을 한다. 그녀는 왕국이 망할 때 끝까지 성을 지키다 탈출하고 그 후에도 여전히 보테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드를 이끈다. 위드는 클로딘을 택하지만 어리석음은 보테에 대한 미련을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버리지 못한다. 북쪽나라의 왕비 다그마르는 보테에 미쳐버린 왕을 대신해 왕국을 이끈다. 그녀는 전투에도 직접 나서 군대를 이끌고 남자들의 어리석음을 간파해 스스로 보테를 죽이려고 한다. 또한 보테가 성에 있을 때 보테의 아름다움에 홀리거나 그를 질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인한 원치 않은 남자들의 구애를 이해하고 그녀를 보살펴주고 글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다그마르는 인간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보테의 딸 마린은 보테를 도와 역경을 극복해나간다. 그녀는 보테가 ‘모뤼’였던 시절의 외모를 그대로 받아 못생겼지만 지혜롭다. 후에 그녀는 보테의 뒤를 이어 왕국을 물려받는다.
보테는 sns에서 여성이 단순히 소비되지 않는 캐릭터로 등장한다고 추천받은 책이었다. 읽고 나니 그 의견에 완전에 동의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보테의 세계관은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며 보테와 여성들은 그 체계에 종속되어 행동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체계를 조금씩 부수어나가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현대에도 남아있는 성에 종속된 남성들을 비판하고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움에서 벗어나도 자신의 인간으로써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