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0
'부분과 전체'
참, 서문이 어렵다. 독서의 기록 일부로 서문에 마음을 쏟는 편인데, 내가 스스로 쓴 후기를 돌아볼 때 서문만 읽을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정말 애착이 가는 책이거든 한 문단께의 서문에 찬사가 그득할 것이고, 진짜 별로 였거든 읽지마라고 경고를 꼭 써두곤 한다.
그래서 참 조심스러운게, 책을 읽고난 느낌이 모호하다. 이토록 난해하고 상이한 주제를 아우르며 동시에 하나하나 장면이 시각화가 되는 노인의 일기장을 본적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경험과 이해가 부족하여 글을 왜곡 시키는게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 서술의 저자가 전쟁을 겪은 핵물리학자이고, 젊은 날의 기억부터 찬찬히 엮어나갔기 때문에 이토록 감사한 글을 남길 수 있던게 아닐까. 보통 사람은 하나 둘 겪었을 그 온갖 대립을 다 겪어내었으니, 한 권의 책을 읽음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쓰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이번 담화는 '대립'이다.
사람이 한정적인 경험과 시간을 가지다보니, 바로 앞의 사람 속 마저 헤아리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그래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참 난관이다. 각자 근거하는 경험이 다르니 이야기가 제각각 나올 수 밖에 없잖은가. 그럼에도 흥미로운건, 이 긴 인간의 역사에서 사람의 머릿수가 많은 만큼, 유사한 경험은 꼭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오래된 과학자의 기록을 엿보는 것은, 이 과학자의 경험이 의외의 생동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고 또 앞선 대립에는 어떤 문제와 결과가 뒤따랐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을 한참 살아간 독일의 물리학자인만큼,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핵무기까지. 사회의 거대한 대립에 있어 하이젠베르크는 항상 그 가운데 폭풍을 지나왔다. 그 중 청년과의 대립, 그리고 역사와의 대립에서 보다 많은 시사점을 남기기에 나누고자 한다.
청년과의 대립이라 칭하기에는 민망하게, 내 기억에 남은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는 그가 30대의 중년에 위치했을 때 일어났다. 사실 그도 중년이라기 보단 좀 젊은 학자의 이미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시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다. 혁명이라는 거대한 질문이었다.
그 당시의 독일은, 1901년생인 하이젠베르크의 나이로 미루어보아 모두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1차대전의 잔재로 거대한 배상금 의무를 지녔지만, 정치 경제 체계의 불안정으로 국민들은 확신을 가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 심지어 하이젠베르크보다 더 어린 청년층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야 했던 것일까. 이제 막 생각이 잡히고 사회에 나갈 즈음되니, 나날히 돈만 찍어내는 정부와 신뢰도가 떨어진 사법부. 기존의 근면이나 성실, 충실등의 가치는 부정되어 자리잡은 쾌락과 유흥의 문화. 이와 대비되는 빈곤의 평준화. 히틀러 유겐트의 청년이라는 모습으로, 패배한 사회의 짐을 왜 새로운 청년들이 짊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가차없이 쏟아진다. 그리고 미처 청년들을 선도하지 못한 지성인들에 대한 비난처럼, 이 응집은 놀랍도록 아돌프 히틀러라는 사람에게 이어진다. 아무리 많은 지성인들이 저 사상과 행위는 결국 창조하는게 없다 비난하더라도, 보다 서민적인 발언과 카리스마로 청년들은 히틀러와 동조해간다. 그리고 이제,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우리에게 합류하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찾아온 청년의 말에는 분명 서술이 노년의 물리학자임에도 마음을 울리는 게 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우리 독일사람들이 모든 것을 시인하고 그저 경멸당하고 조소당하는 나라로서 조용히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지난 전쟁에서 졌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지난번 전쟁에 대한 책임이 마치 우리에게만 있는 것같이 모든 것을 날조하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잘못을 선생님은 그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살기 험난한 지금의 순간에, 그 이유가 본인이 자각키 힘든 전쟁의 패퇴며는 과연 순순히 수긍이 가능할까? 과거 전쟁의 패배로 인해 그 막대한 배상금은 분명 모든 죄악을 독일으로 돌린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에 하이젠베르크는 강대국이 이 짐을 같이 지고 가야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정치의 단위는 국가를 넘어 보다 거대한 단위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현재 나치들의 폭력적인 행태, 반유대적인 정책들이 무슨 더 나은 것을 가져다 주었냐고 묻는다
청년은 답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와 같은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대체 누가 알려주었냐고. 어느 선의의 수단, 유화적인 정책을 말하는 교수들이 지금 청년이나 나치와 같은 단체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어 주었냐고.
청년의 질문은 사실 좀 가혹하지 않을 수 없노라 다시 말하고자 한다. 2차 세계 대전의 직전 상황,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서술에 근간한 이 대화의 내용은 1933년의 당시이다. 1901년생인 하이젠베르크라 해도 30을 갓 넘긴 생생한 학자일 뿐이고, 그 또한 저 청년의 나이에 친구들과 청년연합 활동을 하고 나라를 둘러보며 간신히 전후 독일을 눈으로 봐야했던 학자가 아닌가. 그로 인해 미처 여기에 언급못한 젊은 시절에는 무엇이 더 맞는 것인지 철학적 고민에 깊이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 스스로 답을 내리기도 바쁜 시점에, 더 젊은 새로운 청년들은 계속해서 갈구한다. 우리에게 답을 달라고.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많이, 지금의 모습을 투영한다. 앞서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나 '한국이 싫어서'와 같은 소설에 배경되는 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 히틀러 유겐트의 청년의 분노는 생각보다 닮아있다. 부패한 정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성세대. 알 수 없는 현 세대의 실패. 답을 물어본들 대답할 이는 없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왜 급진적인 혁명을 찾는지 조소만 돌아온다. 이에 이 독일의 젊은 청년은, 그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이론을 다루는 하이젠베르크를 비난한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과거와 그렇게 상이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을 말하냐고. 표백의 그 유명한 한 장면이 아른거린다. 거봐, 도전하니까 정작 피하잖아 하며 상무를 조소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 보다 저명한 과학자에게, 보다 진중한 자세로 청년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우리의 오류를 지적할 자격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대답은 생각보다 겸손하고 그렇기에 진솔하다.
그는 과학의 혁명을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실제 이 새로운 이론들이 세상을 뒤집고자 하는 혁명적 의지에 나온 것이 아닌, 되도록 적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검증과 가설 설정의 끝에 비로소 나온 이론이라는 것이다. 결국 진자운동 및 행성운동과 같이 많은 범위에서 기존의 물리학은 이어지지 않았던가. 아무리 작은 변화, 미세한 변화로 보일지언정 누적되어 과학이나 사회는 변동하는 것이며, 영구기관을 발명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목표는 아무런 결과도 주지 않는다고 하이젠베르크는 대답한다.
이 말을 정녕 하이젠베르크가 기억한대로 전달한 것이라면, 그 이른 나이에 얼마나 고뇌를 거듭한 결과였을까 생각이 든다. 그 자신도 전후의 독일에 불만이 가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혁명이나 보다 위대한 국민상을 논하는 나치의 사상에 젖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학자의 겸양 그득한 말은, 그 자칭 혁명적 활동의 무용성까지 지적하는 단호함마저 엿보인다.
안타깝게도, 이 청년과의 대화는 그 시대의 독일을 설득하지 못한 지성인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에 이 독일청년은 그렇다 수긍치 못하고, 이는 노인의 경험일 뿐이며 우리는 여전히 고독하다 답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는 노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통찰한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행동이나 믿음이 아니었을까. 지성인들이 사회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어쩌면 이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현상을 서술하고 분석하고 싶을 뿐이지 제시하는 이들이 되긴 너무나 힘드니까.
세계 곳곳에서 급진주의가 넘쳐나는 이 시점에 하이젠베르크는 또 같은 말을 해줄 것인가 의문이 남는다. 사실 내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지금 우리나라의 30대, 40대는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궁금한 것이고 미국의 시민들은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궁금한 것이다. 2차 대전시기 전쟁과 사상으로 인해 이민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은, 이제 소외된 백인들을 응집하며 트럼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 나치즘 아래의 청년의 웅변과 유사한 상황을 다시금 보여준다. 보다 강대한 미국, 그리고 반세기전 보다 강대한 독일. 여기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전쟁이 무용하고 기술력의 싸움이기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던 지성인들의 말은 모두 틀렸다. 2차 세계대전은 결국 일어났고, 새로운 전쟁은 새로운 지도자의 유사한 발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인 것이다.
저 물리학자는 청년과의 대립에서 결국 실패한 것일까. 단순한 대립에서 실패를 논하긴 힘들 것이다. 대립에 승리와 패배를 논하지, 실패라는 표현은 모호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 대립의 결과로 인해 하이젠베르크는 이제 인간 역사와의 대립, 다시 말해 과학자로서의 행동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핵의 연쇄 반응이 예견되었을 때, 이 기술을 과연 전쟁을 하고 있는 독일 하에서 연구해야 하는 것인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물은 과연 이 기술이 무기화 되었을 때 사용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이 핵 에너지는 과연 지금 연구해도 온전히 전후 에너지 생산에만 이용될 것인가. 만약 독일에서의 연구가 정당치 않은 것이라면, 미국에 건너가 연구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게 점진적으로 쌓여온 변화가 인간의 생활을 급격하게 바꿀 때, 세계 대전 중인 인간의 삶은 이 무기화 될 수 있는 연구로 인해 얼마나 바뀔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그는 독일에 남는 것과 연구를 하는 것, 둘 다 선택을 했다.
결국 핵무기는 미국에서 개발되었고, 독일에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일본에 사용되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본 저술에서 이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시사한다. 엄청난 개발 비용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의 기간동안에는 결코 사용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는 독일에서 연구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다 부유한 미국에서는 개발이 가능했겠구나 시인하면서도, 이 위력을 아는 과학자들이 무기화에 선뜻 나선 것을 그는 한편으로 공감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독일에서 보다 재력이나 투자가 가능했거든 어쩌면 최초의 핵무기는 독일에서 사용하진 않았을까? 발생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언제나 모호한 추론이 남을 뿐이다.
역사서적을 읽다보면 간혹 유사한 사건들이 발견됨에 놀랍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거시적으로 신빙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를 초월하는 정치 단위가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 성립되면, 같은 실수에서 인류가 느껴야 하는 피해는 점차 커져만 갈 것이다.
여전히, 이 책을 다 읽음에도 나 또한 왠지 모를 아쉬움과 외로움이 그득하다. 결국 명쾌한 답안은 제시되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서가 아닐까.
하이젠베르크의 대답이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나의 30대에 보다 현명한 대답이 가능치 않고서야, 우리는 더 큰 전쟁에 끌려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함만 남는다. 그 파괴적 혁명의 시기를 막기 위해서는, 내 다음 세대에게 저 깊은 외로움을 안기지 않는 것이 제일 큰 문제구나 절절히 느낀다.
이 외에 책의 내용에는 깊은 부분과 재미난 부분도 많고, 과거 앨런 튜링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보니 학문적 서술 사이 사이 들어오는 전쟁의 장면들이 눈에 생생히 그려졌다. 다만 깊어지는 과학적 서술은, 나를 비롯한 다른 학우들에게 다소의 당혹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조심히 말해두고자 한다.
그럼에도, 전쟁 한복판을 살아간 독일의 지성인의 삶을 읽어봄이, 그 여느 대학생 혹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이젠베르크의 기록에서 또 다른 생각을 얻어간 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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