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성을 자극하는 20세기 최고 천재들의 대화편"이라는 표지의 소개에 걸맞게, 과장없이 책의 80 퍼센트는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동료와 스승, 제자들과 나눈 각종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1919년부터 1965년까지의 대화가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생생하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가 과연 이 모든 대화를 기억하는 것인지 오히려 자신이 각색한 이야기인 건 아닌지 의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물론 하이젠베르크는 서문에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의 흐름만 명확히 기억하고 그 세세한 단어의 배열은 다를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 분야의 서적 중 가장 재밌게 읽었다. 책 소개에 앞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야 할 것 같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물리학자로,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만들고 발전시킨 위인이다. 당시는 보어를 비롯해 많은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이 원자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원자 모형을 제시하곤 했는데,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적 관점에서 특정 시점에서 원자의 모양을 정확히 볼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생각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불확정성의 원리는 운동량의 변화량과 위치의 변화량의 곱이 특정 양의 상수 이상이라는 부등식으로 표현된다. 이는 전자의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위치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속도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딜레마를 뜻한다. 우리의 관찰 기술이 떨어져서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자 자체의 성질에 해당한다. 전자는 일반 입자처럼 궤도를 가지지 않으며 다만 확률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뿐임을 하이젠베르크가 밝힌 셈이다. 혹시 화학을 공부한 사람은 여기서 오비탈 개념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어려운 물리, 화학 개념이 들어있고 양자역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생소하지만, 이를 몰라도 책을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하이젠베르크의 과학적 업적이 아니라,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을 연구하면서 겪는 사고의 흐름을 읽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엔 유독 철학자들이 많다. 그래서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물리학자들이 철학자에 가까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 '부분과 전체'에서는 철학이 만연하게 퍼져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정신적 스승이자 동료인 닐스 보어는 '상보성(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두 성질을 하나의 실체가 가지고 있는 것. 각각의 성질은 전혀 다른 관찰법이나 관점으로 보여질 수 있다.)'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대칭성'에서 시작되는 자연의 거대한 연관이 곧 물리학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동시성'이라는 물리적이자 철학적인 개념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다. 그들의 모든 대화에는 철학이 묻어 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철학자들의 반격도 환영한다. 칸트철학의 그레테 헤르만과 실증주의 철학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양자역학은 그 철학적 의미를 다져간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과학적 발견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양자역학이 어떤 철학적 사고의 흐름으로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이젠베르크도 그 점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양자역학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발전된 과학이다. 20세기와 독일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세계대전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과학자이다. 1차 세계대전 후엔 청년운동을 하고, 2차 세계대전 중의 우라늄 클럽 활동을 하며 전쟁에 대한 그의 사고 또한 깊게 묘사된다. 그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이민을 갈지 독일에 남을 지에 대해 고민하며 막스 플랑크에게 조언을 구한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으로 이민 간 많은 동료 과학자들처럼 자신도 이민을 가야할 지, 아니면 막스 플랑크 본인처럼 독일에 남아 독일 과학계를 지킬 건지를 고민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플랑크가 말했다. "... 물론 나는 다른 결정을 하는 사람들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독일에서의 삶이 견딜 수 없어서, 이곳에서 자행되는 불의를 그냥 지켜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기에 이민을 간다 해도 말이야. 독일이 처한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는 아무도 더 이상 올바르게 행동할 수 없네. 어떤 결정을 한다 해도 불의에 가담하게 되는 셈이지. 그래서 결국은 모두 스스로 선택해야 해. 조언을 하는 것도,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라네. 그러므로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파국이 종결될 때까지는 많은 불행이 있을 것이고, 그런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건 버려야 한다는 것뿐이네. 하지만 그 뒤에 올 미래를 생각해서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 하이젠베르크는 플랑크의 말을 듣고 독일에 남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후에 이민 간 동료들과 미국에서 짧게 만나 나눈 대화 속에서도, 나는 하이젠베르크가 깊은 숙고 끝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유명한 말이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 나는 늘 이 말이 헷갈리곤 했다. 과학은 자유로우며 전 세계가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뜻인지, 과학자는 과학보다 먼저 조국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인지 말이다. 적어도 하이젠베르크는 두 의미 모두를 가슴에 품은 것 같다. 독일에서 태어나 물리를 공부했고, 또 양자역학을 탄생시켰다. 하이젠베르크의 독일에 대한 애국심은 남달랐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히틀러의 정치를 지지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나치당의 지식인으로 들이려는 젊은 학생에게 나치의 정치는 옳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과 물리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 후의 미래를 봤다. 원자폭탄의 개발을 막고, 전후에 망가진 독일의 물리학계를 다시 살리기 위해 긴 전쟁의 기간 동안 독일에 남기로 한 것이다. 과학자는 조국이 있기 때문에 과학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가지는 고뇌를 이 일화를 통해 절실히 경험했다. 내게는 과학적일 뿐만아니라,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이 책에 쉽게 중독될 것이다. 딱딱한 공식들로만 만나봤던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을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