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현대사회
-당신과 나의 불안을 해결하는 마법의 열쇠, 자기진실성-
흑백의 어두운 배경, 쉴 새도 없이 돌아가는 공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짓 할 수 없는 분위기, 우스꽝스럽게 같은 작업만 반복하는 일꾼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한 현대사회’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릴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의 장면들이다. 영화의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커다란 공장의 한 일꾼으로서,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빨리 답을 먹고, 나사를 조이는 일만 계속한다. 결국 그는 나사 비슷한 것만 보면 조이려 들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현대의 ‘불안한 사회’가 아니다. 현대는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옴에 따라, 개별성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대두됨에 따라, 기계화에 따른 인간 소외 현상은 옛날만큼 큰 문제가 아니다. 커다란 공장은 사라졌고, 힘이 세 보이는 관리자도 누그러졌으며, 개인 앞에는 느리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만 남아있다.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명목으로 사회는 개개인에게서 억압과 함께 삶의 지표도 같이 앗아갔다. 그들을 가두던 공장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환호하고 연장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들은 자신이 더 큰 세상의 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자신에게 윽박지르는 사람만 없을 뿐, 자신은 계속해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실제 사례를 대입해보면, 미국에서는 1863년 노예해방선언 후,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 후 노예들은 그들의 신분에서 탈피했다. 주인의 하수에서 벗어난 행복은 순간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결국 그들은 주인의 밑으로 다시 돌아왔다. 해방된 노예와 일꾼의 모습이 현대의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찰스 테일러는 ‘불안한 현대사회’라는 책에서 현대사회를 위협하는 3가지 위험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찰스 테일러는 현대사회는 ‘개인주의로 인한 삶의 의미 상실’, ‘도구적 이성 앞에서 소멸하는 삶의 목표’, 그리고 ‘자유, 자결권의 상실’을 현대사회의 불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중 나는 ‘개인주의로 인한 삶의 의미 상실’이 나와 가장 밀접한 현대사회의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삶을 살도록 도와줌과 동시에 개인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희석시켰다. 백지상태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만의 의미를 구축해야 하는데 타인과의 연결망이 희미해졌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개인주의 내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에만 집중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교집합을 상실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개인은 공허함과 막막함을 느낀다. 영화 ‘라빠르망’에서 주인공들은 아파트라는 공간 내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나눈다. 이처럼 인간사회는 각각의 주거공간이 지켜지는 와중에도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사회라는 아파트에서 자신의 주거공간에만 처박힌 채, 외로워하고 있다. 개인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고 그 관계 내에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개인주의가 자신의 주거공간을 확립하고 지키는 목적으로 존립한다면 바람직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심화된 개인주의는 개인을 집안 방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극화된 개인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테일러는 ‘자기 진실성’을 제시한다. 자기 진실성은 자신의 본연의 개성이나 취향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권리이다. 자기 진실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아 정체성을 찾게 하고 사회로 하여금 다원화될 수 있게 하므로 타당한 이상이다. 일례로, 사회가 다양한 인간상을 포괄하고 여러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 이상적인 사회의 발현방안을 토의하는 장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자기 진실성을 실현할 방안을 찾는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자기 진실성 표현은 공리의 확대로 이어진다. 공리적인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깊이있고 자유롭게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심하게 한다. 이렇게 자기 진실성에 대해 고민하는 개인들은 ‘의미있는 타인’이 되고 이는 자기 진실성의 이상적인 실현되기 위한 방안을 알려주는 초석이 된다. 개인은 사회에서 동떨어져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자기 자신의 표현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중도를 지켜야 한다. 자기 진실성의 표출정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사회와의 소통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은 개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그는 여러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타인과 이야기를 하고 생활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진실성에 대한 탐구는 개인의 만족감을 높이고 만족스러운 개인들이 나누는 대화는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속에서 따뜻함을 잃어간다. 극화된 개인주의는 결국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개인의 외로움을 심화하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자기 진실성’이다. 자신을 표출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장에서 개인은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인정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 자신에 집중하고 그것을 표출해 타인과 교류하면 이 사회는 알을 깨고 나온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로 조화롭게 뒤덮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