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불안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왔다. 대학생, 직장인은 물론이고,유치원에 다니는 옆집 아이에게, 그 옆 집에 사시는 90대 노부부에게, 어쩌면 갓 태어난 나의 조카에게도 불안은 존재한다.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흐릿한 미래가 자신을 어떻게 쥐락펴락하게 될지, 과거에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나는 얼마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 따위의 생각이 혼재한다. 특히 나는, 자신을 불안에 취약한 존재로 생각한다. 불안, 의심, 예민함 따위의 단어들은 나 자신을 정의할 때 자주 쓰는 말들이다. 이런 불안정함, 그리고 이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는 불안과 불완전함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우연히 접했을 때, 들춰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하고 예리한 묘사로 이루어진 소설책, 그리고 여러 강의로(그 중 TED talk의 Atheism2.0 강의를 특히 추천한다. 종교가 주는 압박감과 죽음 이후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안해하던 나를 위로해준 강의이다.) 나를 홀린 매력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대한 고찰이라니, 시험기간이었지만 당장 꺼내 읽을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을 쓰는 것이 특히나 어렵다. 며칠째 이 책을 붙잡고 글을 썼다가, 또 지웠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소감을 선뜻 쓰지 못 했던 까닭은 간단하다. 알랭드보통의 <불안>은 나의 예상과 너무나도 다르게 전개되었다. 역시 역사학도답게, 알랭드보통의 글은 상당히 원론적인 불안의 근원부터 시작한다. 그 중, 물질적인 불평등함에서부터 오는 불안에 대해 꽤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다. 현대 사회는 대체로 돈이 많은 사람을 더 성품좋은 사람으로, 더 능력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돈이 많으면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되고, 그러면 사회에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게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회의 주류로 흡수되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을 멸시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풍자하는 여론이 있다고 해도, 결국 우리 사회는 돈 많은 사람을 건물'주님', '금수저', '나보다 돈 많으면 형님' 따위의 말들로 올려다보고 대접한다. 그렇다면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명성을 떨치지 못 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그야말로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이와 달리 과거 민중은 자신의 신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이 정해준 운명을 그저 겸허히 받아들여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귀족이 될 길이 없으니,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재산을 신이 정해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귀족에게 열등감을 품지 않을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사람들에게 모두 '평등한 기회'를 가졌음을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낙오자로 남게 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된다. 실패를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제 꼴사나운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개인은 타인이라는 비교 기준을 만들어 끊임없이 자신의 기대치를 높이게 된다. 이 물질적인 비교, 열등감이 내가 느끼는 불안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이 기나긴 역사적인 맥락이 나라는 개인의 의식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그 과정이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들이었는지 받아들이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다행히, 이 책에서는 이 무력감과 공허함에 대한 해결책 또한 제시해준다. 이제서야 조금은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어투를 읽게 되는 듯 하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의 한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그저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내 이성의 합리성을 믿고, 그에 대해 떳떳하다면, 남의 쉬운 평가는 나에게 상처와 불안을 안겨줄 수없다는 것이다.
내 불안은 결국 나에 대한 불확신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다. 평생에 걸쳐도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이 책이 친절하게도 제시한 철학, 정치, 예술작품의 도움을 통해, 나에 대한 의심을 한 줌이라도 덜어가며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