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이 책에서 비행운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번째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서 기나갈 때 생기는 얇은 꼬리 모양의 구름을 의미한다. 두번째 비행운(非幸運)은 한자의 의미 그대로, '행운이 없음'을 뜻한다. 김애란의 단편집 '비행운'은 소설 속에서 두 의미의 비행운을 모두 차용하고 있다. 작가는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머무르는 구름, 무언가 있었던 흔적을 한참 동안 올려다 보고 싶은 것, 그것이 소설의 역할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이 책의 제목을 비행운(飛行雲)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소설집은 총 8개의 각기 다른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나이대, 성별, 상황 속의 인물들이라, 소설 속에서 이들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일은 결코 없거니와(각 단편이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맥락 상 인물들 간의 연관성 역시 전무하다. 하지만, 너무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된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비행운(非幸運)'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운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처럼, 각 단편들은 인물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매우 문학적이고, 다양한 은유법으로 묘사된 악화일로는 그 표현이 시적이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우울감 때문에 하루에 2편 이상을 읽을 수가 없어서 독서 기간이 매우 늘어지기도 했다.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날아간 자리에 남는 흔적이다. 어딘가로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고,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풍성한 기대감과 들뜬 마음이 느껴지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단편 '호텔 니약 따'의 주인공은 해외 여행을 떠남으로서 직접 비행운을 일으켰고, '하루의 축'의 주인공은 비행운이 수시로 일어나는 공항에서 노동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역시 비행운(非幸運)으로 끝난다는 점이 우울하면서도, 수미상관의 법칙을 따른 시를 읽었을 때 안정감이 드는 것처럼 소설의 구성에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느낌의) 단단함을 느꼈다.
살아 남는다는 것
각 단편의 비행운(非幸運)적인 사건들의 나열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살아남는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또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며 끝나기도 한다. 행운이 보장되지 않은 미래,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채 마주해야하는 시간들. 삶은 그런 시간들의 축 위를 서성이는 것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의 비행운(非幸運)들 속에서 '살아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단편을 꼽는다면, 첫번째는 바로 '물속의 골리앗'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미성년자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결핍되어 있었던 점 때문에 그가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또한,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맞딱드렸을 때 드는 공포를 느꼈다. 이전에 살았던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인해서 지금 살아 남은 인간들이 느껴야하는 공포, 자연 훼손에 따른 재해에 대한 책임감과 반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두번째는 '서른'이다.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어린 시절의 나 또한 그랬다. 이 단편의 주인공 역시 그랬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서 결국 다단계에 발을 들이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학생을 이용해먹을 것이라는 인생 목표를 세울 사람은 없을테니까. 삶은 기대한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함정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다른 사람을, 심지어는 나를 좋아해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면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긍정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게 흘러간다고. 웃는 얼굴엔 복이 온다고. 그런데 가끔은 그런 식으로 삶의 힘든 부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에 급급해서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만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서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을 홀대하지는 않는지. 조금은 잔인할지 몰라도, 인간의 추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택해온 잘못된 선택들을 뒤돌아보는 것들이 살아남은 우리들에 대한 예찬이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