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금융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으로 주로 부실한 금융 시스템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금융 시스템은 방관 속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성장동력이었던 제조업이 중국 등의 신흥 산업국가들로 옮겨간 뒤 대안적 산업으로 육성돼 왔다.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성장을 책임지는 금융업이 경기침체를 만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기존의 정통 경제학적 설명에서 벗어나 통계에 기반한 자료로 아주 신선한 관점에서 이 책에서 크게 세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레버드로스에 의해, 즉 채권자와 채무자의 불평등한 위험 부담에 의해 불황이 심화됐다. 저자들에게 불황은 소비를 침체시키는 충격이다. 그리고 자산가격이 떨어질 경우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채무자는 손실을 혼자 짊어지게 되는데, 채권자에 비해 채무자가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 기술주 폭락 때와는 달리 금융위기 직후 소비가 굉장히 침체된 것이다.
둘째, 나아가 저자들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신용공급의 확대,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원인이 모기지 대출을 확대시킨 은행이라고 주장한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각국은 이후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달러화로 표기된 금융자산을 구입해 환율을 안정시켰고, 달러화가 미국으로 급격히 유입됐다. 이로인해 국가가 충족시킬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초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고 그것이 바로 문제의 모기지 증권이다. 민간부문에서 모기지 채권을 증권화해 판매하는데, 은행들은 자격이 안 되는 이들에게도 대출을 해줬고 또 증권화된 상품을 판매할 때 역시 위험성을 속였다고 지적한다. 모기지 대출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급상승했고, 소득은 그 만큼 따라와주지 못했다. 초기애는 상승한 집값을 통해 채무를 갚아나갔지만, 집값이 계속 상승하자 애초에 집값을 지불할 돈이 없던 가계를 중심으로 채무불이행이 일어났고 집값은 폭락했다. 은행은 자산을 보전하기 위해 집을 팔았고, 부정적 외부효과로 채무불이행 가계는 늘어났다. 이로 인해 소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니 일자리도 줄어들고 다시 채무불이행 가계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즉, 증권화에 의해 확대한 신용공급이 불황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셋째, 저자들의 관점에서 은행을 통해 신용을 공급하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예금주와 지급결제제도 보호는 당연하지만, 채권자와 주주는 굳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금주와 지급결제보호는 소비와 연결되기 때문에 침체와 연관돼 있지만 채권자와 주주는 기술주 폭락 사례에서 보듯이 침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또한 기업 역시 내부 보유현금을 늘려왔기에 불황 시에 굳이 은행에서 대출하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은행들에 대해 구제금융을 실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들의 입장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간접적이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며, 직접적인 채무탕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채권자에게서 채무자로 직접 자원을 옮겨야 한다.
다만,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2007/8의 리먼사태에 대한 원인을 일관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부동산 버블의 발생원인을 행동경제학의 실험적 성과를 이용해 설명한다. 즉, 이들은 실질적으로 메커니즘을 밝히고 있지 못하다. '실험적으로 버블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버블이 발생했다'는 동어반복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들의 진술은 정책 등에 당장 사용하기에는 유용하다. 예를 들어 가격이 폭락할 때 미리 투매를 잠시 가라 앉히는 '쿨타임'을 갖는 것은 특히 주식 등 국가에서 관리하는 자산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실험 결과로 이뤄진 진술의 유용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경제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데 이러한 설명은 어쩐지 의문을 남긴다.
한국에서도 가계부채 문제는 2011년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대선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계부채 7대 해법을 내놓으면서 다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7/2017031700281.html) 가계부채 탕감에 반대하는 측의 주된 논리는 모랄 해저드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스스로 채무자가 되고 문제가 발생했는데 공적자금을 투입해야하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듯 신용 시스템은 결국 공동체의 문제다. 가계부채 탕감을 그저 '불쌍한 채무자 구제' 프레임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저성장 국면에서 신용 시스템이 전체 경제에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