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읽었던 같은 시리즈의 '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에 이어 이번엔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를 읽어보았다. 저번에 읽었던 책에서는 삼국지에서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조조를 현대의 경영전략적인 면에서 재조명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유비의 리더십에 대해서 서술하여 삼국지 내용에 좀 더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삼국지를 한번더 정독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유비는 삼국지에서 소개했듯이, 한나라의 제후국인 촉나라의 왕으로 위나라의 조조, 오나라의 손권과 함께 중국 대륙을 삼분했던 사람이다. 손권은 강동 지방에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의 유산을 이어받아 오나라를 크고 강성하게 만들었고, 조조는 당시 세력가였던 환관의 양자로서 동탁 토벌을 가장 먼저 주창하며 거병을 할 만큼 기반은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탁주의 누상촌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짜며 생계를 유지했다. 손권과 조조에 비하면 이렇게나 기반이 없었던 유비가 어떻게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성장하여 제후국의 왕이 되었을까?
유비는 집안이 가난하면서도 집안이 한(漢) 황실과는 먼 친척관계였다. 그런 집안 사정 때문인지 유비는 학문을 게을리 하진 않았는데, 유비는 스스로를 유씨 종실이라 소개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 때부터 유비는 마음속에 어떤 꿈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속에 품은 뜻을 간직하고 있다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를 하고 동탁 토벌 의병에 참가하여 공적을 쌓는다. 아무 기반이 없었던 유비 삼형제는 사형이었던 공손찬의 휘하에서 공을 쌓는데, 후에 도겸, 원소, 여포, 조조, 유표, 유장 등에게 차례로 의탁하면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곤경을 벗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영향력을 점점 확대해나갔다. 위기를 만날때 마다 유비 특유의 능굴의 능력으로 위기를 넘기곤 했는데, 무조건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가면서 굽신댔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유비는 능신의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철학을 저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는 서주의 도겸이 서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세번 거절하였고, 신세를 졌던 형주의 유표가 아들 유종의 무능으로 조조에게 항복하여 유비는 양양으로 후퇴해야 할때, 유비를 따르던 백성으로 인해 후퇴속도가 매우 느려 따라잡힐 위험에 처해있음에도 끝까지 백성을 저버리지 않는다. 또한, 형주를 차지해버리자는 제갈량의 제안을 거절하는 등 단순히 이익만을 좇는 소인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나 신뢰하던 제갈량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임에도 유비는 그의 대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크게 실패하긴 했으나 이후 형주 백성과 인재들이 유비를 인정하고 따랐으며 점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산전수전 다겪으며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시작했던 촉 땅에서 천하를 삼분하게 된 것이다.
유비가 이렇게 처세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역시 유비의 가장 큰 장점은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기대어 성장해 오면서도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 인격적인 모독이나 무시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조언도 열심히 들었는데, 그럴수록 아랫사람들의 칭송은 자자해졌다. 한 예로 장송이라는 사람은 조조에게 외모가 추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유비에게 가게 되는데, 유비는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감동을 준다. 장송은 이에 화답하여 서촉의 중요 정보를 유비에게 바치고 서촉의 패업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유비는 전적으로 신뢰했던 제갈량 뿐만 아니라 방통, 서서, 미축, 동화 등의 말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그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결정을 내려 각자가 불만이 없도록 하였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유비는 이 책의 제목에서 알수있듯이 능굴능신(能屈能伸)의 달인이었다. 상황에 따라 굽히어 들어가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것. 굽히어 들어가는 것이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이 결코 아니며 대의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유비는 말한다. 속에 큰 뜻을 품은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것을 제외한 한 순간의 굽힘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해서 한발 한발 목표를 향해 정진해나가 결국엔 뜻을 이룰 것이다. 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성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