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둘은 친구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남자는 받아 주지 않는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둘은 하객으로 우연히 마주친다. 여자는 남자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자신이 뿌듯하다. 남자는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흔한 말. 이 말은 사람이 사랑에게 얼마만큼이나 속수무책인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제멋대로 사람의 몸을 숙주로 삼고 제 몸을 불려나간다. 한 인간의 가슴에서, 머리에서, 손끝에서,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아간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 『사랑의 생애』는 이런 사랑의 다양한 생애를 그린다.
1. 형배의 사랑
p.80 그런데 왜 형배는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다. 위험이 닥칠 것을 예감할 때 사람은 염려하고 기피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면 사랑에 붙들리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일이 위험한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위험을 유난히 예민하게 의식하는 사람이 사랑을 두려워한다고 말 할 수 있다.
p. 81 사랑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사랑에 대해 더 진지하다. 더 진지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함부로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다. 함부로 하는 것은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함으로써 모독하느니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이다.
2. 준호의 사랑
p. 76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속설에 속지 말자. 도덕은 사랑이 아니라 인간됨, 혹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태도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어보자. 평생토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름답고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추켜 세워져왔는데, 그런 사람은 도대체 왜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일까? 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기적 같은 어리석음을 실천하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랑(즉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거나 어떤 이유에 의해 억압되었거나.
p. 79 결혼이 중요하고 필요한 제도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내 말은 결혼은 제도로서 중요하다는 것, 그러나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 제도의 유지를 위해 사랑은 왜곡되고 희생을 강요받았다. 결혼은 사랑이 전혀 관여하지 않거나 아주 조금밖에 관여하지 않는 분야이다.
3. 영석의 사랑
p. 142 선희를 만나면서 그가 정말로 원한 것은 사랑한다고 해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험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기를 겪는 일이었다.
p. 180 사랑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사랑이라면, 그것은 생존을 위한 사랑일 것이다. 살려고 사랑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사랑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4. 선희의 사랑
p. 59 선희야, 하고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이름 대신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이 그녀의 내부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더니 어떻게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울음이 되어 쏟아졌다. 복받쳐 올라오는 그녀의 이 격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선희야, 하고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불렀으면서도, 그 순간 그녀 귀에 들린 것은 그녀가 듣기를 원했던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p. 270 자기가 한 그 말이 그 마음 약한 사람을 얼마나 상처 입혔을지 상상이 되었고, 일주일째 연락을 끊고 지냈으니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고,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관대하지도 침착하지도 않은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물이 밀려들 듯 삽시간에 찾아들었고, 그러자 영문 모를, 걷잡을 길 없는 그리움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유명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이 책을 다룬 적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씨와 이동진씨의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들었다. 이동진씨는 이승우 소설가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작품을 한 개도 빼놓지 않고 모두 모았다고 했다. 그는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 역시 고평가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담론으로 유명한 알랭드 보통과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동진은 이승우의 책이 보통보다는 훨씬 무겁고 지독하다는 점을 들면서 보통보다는 밀란 쿤데라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일찍이 쿤데라의 소설에서는 그의 사상을 위해 그의 사유의 각 방면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곤 했다. 유명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그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공고히 했던 것이다. 이승우의 소설또한 그렇다. 형배, 준호, 선희, 영석은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풀어내며 보여준다.
작가는 어떤 한 사랑을 우위에 두지는 않는다. 물론 어리석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던 형배가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선희와 영석의 사랑을 보고 크게 깨닫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부분에서조차 형배의 사랑의 모습이 새롭게 변모했다고 쓴다. 형배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는 순간에조차 다가온 사랑의 모습은 단지 새로운 것일 뿐 가치의 우위를 지닌 것이 아니다. 준호의 자유로운 사랑, 영석의 기생하는 사랑도 그러하다. 선희의 경우는 어떤 사랑의 확실한 포지션은 없다. 그녀의 사랑 또한 속수무책이지만 형배나 영석의 그것과는 달리 더 온건하며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모든 사랑의 생애를 통틀어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어쩔 수 없음, 사랑의 속절없음이다. 작가는 사랑의 이 특성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본다. 사랑을 사랑이게 하는 특성인 것이다. 제각기 숙주의 몸에서 다양한 생애를 살아가던 사랑은 이 어쩔 수 없다는 특성으로 범주를 형성한다.
5. 우정
p. 212 잘 보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정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관계이다. 보르헤스는,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6. 의심
p. 218 이 의심하는 사람은 무엇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기 의심이 오해에서 비롯한 것임이 밝혀져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기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것이다.
7. 질투
p. 228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8. 이기심
p. 255 배려는 이기심을 넘지 못한다. 배려보다 이기심이 더 큰 사랑의 증거로 간주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수사가 이 세계에서 위선과 변명의 표현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자기는 물론 연인의 파멸조차 감내하는 극한의 이기심을 사랑은 요구한다. 그, 또는 그녀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 이기적인 것이다.
작가는 사랑의 생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제공한다. 이제는 같은 상황에서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