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산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여유라는 단어나 휴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어느 누구도 ‘산책’을 이동의 수단으로 여기며 목적을 가진 행위로 취급하지 않는다. 산책은 휴식이나 여유라는 말 그대로 목적을 가지지 않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리킨다. 과연 그러한 나만의 목적 없는 산책은 자본주의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기에 철학자 김영민은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가?
자본주의란 자본이 중심이 되는 이데올로기로 모든 행위에 목적과 효율을 추구한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도구라고 칭한다. 도구란 사물이 아니다. 데카르트의 공간에 존재만 하고 있는 사물이 아닌 도구라고 칭해진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말했던 것과 같이 도구 연관관계 안에서 그 의미를 가지며 결핍을 통해 그 도구는 사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인식된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이러한 도구 연관관계 안에 있는 도구로 취급하며 그 관계 안에서 결핍을 통해 드러날 때 사람들 개인을 인식한다. 하지만 철학자 김영민이 주창하는 산책이란 행위의 목적성이나 도구성을 배제한 온전히 이유 없는 보행이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산책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역이며 해방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산책이란 단순히 비어있는 부재와 무욕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산책이란 ‘동무’와 함께 더불어 연대하는 삶의 방식이라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산책은 그가 썼던 ‘보행’, ‘동무론’ 등의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모든 것은 이동이며 교환이라 말하며 산책은 이동과 다른 그저 걷기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산책이란 ‘자본제적 체계와 생산적으로 불화하는 삶’이다.
‘산책과 자본주의’에는 다양한 사회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데 이 책은 다른 서양의 철학책들과 다르게 한국의 현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담겨있어 한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고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책 3장에서 언급하는 핸드폰에 대한 내용은 그가 책을 썼던 과거와 다르게 스마트폰이 등장했기에 더욱 심각하게 스며든다. 김영민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의 “스펙타클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대한 담화이며, 자신을 찬미하는 독백”이라는 구절을 언급하며 휴대폰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 말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는 휴대폰을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으로 사용하지 못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 말하는 현실과 함께 실제로는 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인 매개체로 작용하는 휴대폰의 현실을 지적한다. 그가 바라본 휴대폰은 나르시시즘적인 거울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도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찰은 과거보다 현재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카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할 필요 없는 말들을 하고 단체채팅방에서는 스스로 자신이 할 말만 하며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아닌 내가 선택한 정보만이 보이는 선택적 반투과적 막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이라는 천재적 도구로 인해 은폐되고 자신조차 속이는 도구로 진화했다. 김영민은 보부아르의 표현을 차용해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핸드폰을 통해서 ‘자신의 참된 존재를 헛되어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부분에서 김영민은 정치에 대해 논한다. 그는 정치를 말하기 이전에 ‘풍경은 기원을 은폐한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를 빌려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정치란 무엇보다 풍경이며 정치는 그 풍경을 재생산한다. 하지만 그는 독일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억의 정치’를 언급하며 한국 정치의 기원에 대한 망각을 경고한다. 정확히는 친일과 독재와 부패의 기원을 망각한 한국 정치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그들의 기원을 은폐한 풍경을 보여주는 정치를 접하고 있다. 이 책이 쓰여진지 10년이 지났지만 그가 말했던 풍경은 여전히 현대의 힘든 사람들을 풍경으로 재생산하며 기원을 은폐한다.
철학자 김영민의 ‘산책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산책을 하는 사람이 이동하는 사람들을 관조하며 관찰하듯 세상을 관찰하고 고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어떠한 도움이나 정보를 획득하고 지적 충족을 위해서 읽기보다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