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소설은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이다. 손원평 작가의 데뷔작인 ‘아몬드’를 매우 인상 깊게 읽었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떨지, 그리고 감정을 느낄 줄 아는데, 올바로 공감하지 못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삐뚤어진 ‘나’라는 인간에 대해 성찰하게 해준 좋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서른의 반격은 아몬드의 깊은 여운이 남았기에 기대감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스펙도 변변치 않고, 하루하루 삶을 버거워하는 서른 살의 만년 인턴 김지혜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신입 인턴으로 들어온 규옥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규옥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써, 우리가 부당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외치기만 해도 세상은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규옥과 지혜는 회사의 교양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우쿨렐레 강좌를 함께 수강하면서 만나게 된 무명작가 무인, 그리고 딸아이의 아빠인 남은 아저씨와 친해지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반격을 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그라피티를 하기도 하고, 남은 아저씨의 레시피를 훔쳐 요식업계의 대부가 된 현 국회의원 한영철의 머리에 계란을 던지기도 하고, 공모전에 출품된 무인의 시나리오를 훔쳐 대박을 터뜨린 영화의 무대 인사에 올라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음에 좌절하고, 결국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다만, 그들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조금은 퍽퍽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내용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마라톤 행렬 중 어딘가에 속해 있을 뿐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도록 뛰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모두의 틈에 섞여 바쁘게 발을 옮기다 결국 현재의 나에게까지 이른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관객이, 예술가보다는 대중이 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다. 어딘가 높은 곳에 사는 누군가의 집 창밖으론 점점 화려해져가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있고, 다른 ‘보통의’ 누군가의 밤에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결국 끝없이 초라해지고, 위축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많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자신의 꿈 사이의 괴리에 좌절하고, ‘작은 사람’이 된다. 작은 사람은 빼앗기는 것에 익숙하다. 직장 상사가 성희롱 하는 것, 무명작가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대형 기획사에 탈취당하는 것, 자신이 쓴 논문이 교수의 이름으로 학회에 등록되는 것 등, 작은 사람은 삶을 살면서 수없이 빼앗긴다. 빼앗겨보지 않은 나머지의 작은 사람들은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일시적인 동정과 연민, 그리고 빼앗은 사람들에 대한 순간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친다. 작은 사람이 결코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갑질 문화가 팽배하고 자본 중심의 사회 구조가 개인의 사고를 부조리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지킬 재산이 있고, 가족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입바른 말 한번 했다가 미운털이 박히고, 궂은일을 맡게 되고, 견딜 수 없게 되고, 결국 밥줄이 끊기는 것이 ‘용기를 낸’ 작은 사람의 보편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조금씩 조금씩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세상이 바뀔 만큼의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빼앗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약간의 수치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미래의 자신이 과거에 부조리에 대항해 자신이 행했던 작은 반격을 되돌아보면서, 사회가 부조리했었음을 ‘지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작은 반격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가만있으면 착취와 희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래도 되는 것처럼 대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한다.
초반에 책을 읽었을 때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부조리에 순응하고, 착취당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제 몫을 챙기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가, 저항도 결국 돈과 시간이 있는 배부른 사람들의 서민놀이, 기만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벌써 너무 닳고 닳은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중 많은 반격, 그리고 사회 문제를 보면서 작게나마 용기가 생겼다. 먼지가 모여 우주가 된다고 해서 먼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그럴 것이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내고, 내 목소리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용기를 불어넣어준다면, ‘나’라는 존재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우주 속 먼지에 불과하겠지만, 최소한 내 자신에게만큼은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항상 생각은 하는 사람이었다. 단지 잘못을 고칠 노력을 안했을 뿐이다.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거였다. 그리고 안하니까 못하는 거였다. 부조리한 것에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의 내 다짐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일시적인 관성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떠올리고 싶다. 왜소한 내가 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