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에도 세계사를 듣기를 했지만, 지금껏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만났던 역사책들은 주로 정치, 사회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었었다. 미술에 대한 부분은 작품에 대한 설명은 배제된 채, 단순히 작품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만 봤을 뿐, 그 내용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서양미술사’라는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책은 고등학교 때 수능 언어영역의 지문으로 나왔을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고 항상 서점에도 스테디셀러 섹션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봤었다. 하나의 책이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언젠가 한 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고, 이제서야 그 책을 앞에 접하게 되었다. (가격과 두께가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포켓북으로 된 책도 나온 것으로 알지만 그렇게 볼 바에는 차라리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책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이 물론 더 가치 있겠지만, 작품을 보더라도 그 자체만 보는 것으로는 의미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큐레이터나 작품 설명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고는 한다. 이 책 또한 하나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이유, 사회적인 분위기 등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의의를 두자면, 미술의 역사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게 된다는 데 그 가치가 크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처럼, 똑같이 미술관에 가서, 같은 설명을 들으며, 같은 작품을 보는 사람이더라도, 감상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작품마다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 책을 전부 다 읽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책의 서론만 읽어도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곰브리치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미술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그 작품을 만드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고. 미술은 인간의 표현방식 중 하나이며 그 표현의 뒤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를 알아낸다면, 비로소 우리는 그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술에 관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누구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모든 암시를 포착파고 숨겨진 조화에 감응하려는 그런 참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며, 그 마음가짐은 무엇보다도 상투적인 미사여구나 진부한 경귀 같은 것에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작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기 위해서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미술 또한 미술가와 감상자를 잇는 하나의 매개로써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