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에 즐겨 들었던, 그 시절 그 추억이 담긴 노래를 방안에 흘려놓고 책상서랍에서 연습장과 볼펜을 꺼내었다. 마라톤 출발지점에서 쏜 총소리처럼 볼펜 뚜껑을 눌러(또각!) 이십대가 되어버린 나에 대해서 하나씩 돌이켜보며 쉼 없이 써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을 정리해보려 했었던 내 모습은 연습장의 한 면을 다 채우지 못했고, 달리던 내 볼펜은 잠시 멈추어 나를 재촉하기만 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혼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힐끔 볼까 얼른 덮어두고 말았었다. 이십대! 대학생. 그리고 나. ‘李炯東‘ 으로 살면서 내 자신을, 또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지만 이러한 순간순간마다 마음의 꽃에 물을 주고 보듬어주며 가꾸어주었던 친구가 바로 ‘지구별 여행자’ 이다. 비록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능력도 부족한 나였지만 마음만큼은 넓고 깊은 바다처럼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자세를 일깨워주었던.
– 인도에서는 인도만 생각하고, 네팔에선 네팔만 생각할 것! 여행자들은 서로 만나면 자신이 여행한 다른 장소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인도에선 네팔 이야기를 하고, 네팔에선 인도 이야기를, 뭄바이에선 캘커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도 언제나 어제와 내일을 이야기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우리들. 지금 이 순간에도 달리기를 멈추면 죽을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1등이 아닌 2, 3등으로 뒤쳐져 있더라도 조금 더 희망적이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늘의 내가 조금 후면 어제의 내가 되고, 오늘의 나는 또 다른 내일의 내 모습이 되듯, 지금 이 시간만큼 충실한 내(우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온종일 잡초뽑기를 하여도 그 순간만큼은 집 안마당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그것만큼 또 즐거운 일이 어디있을까
– 진리는 단순한 것이오. 마살라 도사(속에 야채를 다져 넣은 인도식 팬케이크)를 먹을 때는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고, 탄두리 치킨(닭고기에 향료와 요구르트 등을 발라 진흙 화덕에 구운 것)을 생각하지 말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이오. …… 그 명언은 오래 씹을수록 향이 나는 소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는 인도 음식을 먹고 나면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풀씨처럼 생긴 작은 열매로, 그것을 씹으면 음식 냄새가 제거되고 입 안에 향기가 더해진다.
우리는 아직도 성장하는 과정에 속해있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다고 생각한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력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이다. 분명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셀 수도 없이 세상 속에서 우릴 유혹한다. 나는 감히 유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글쓴이도 전공공부에 시달리며 한 학기를 보내야 했다. (더욱이 한창 의욕이 펄펄 넘치는 복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통나무를 누가 나에게 던져주었을 때 톱질이 재미없으면 대패질을, 대패질이 재미없으면 사포질을 해서라도 누군가에게(혹은 내 자신에게) 의미있는 작품이 되는데 기여를 하도록 만들자. 이거 하기 싫다고 불에 태워버리고 싼 값에 팔아넘기자는 꾀돌이같은 태도로는 결국 돌아오는건 후회뿐일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불평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불평뿐인 태도는 고스란히 남아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 여기에 계신 신입생 여러분, 뜨거운 열정을 가진 가슴과 차가운 냉철한 사고를 가진 성균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그 때 즈음이면, 자기가 누구인지 또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졸업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 손동현 교수님(06년도 신입생 환영행사에서)
이제 3학기 남은 대학생활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공인어학점수와 학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을 준비하면서도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밝은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나무를 살릴 수 있는 특별한 거름은 없다.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생기발랄한 나무라고 생각한다. 지구별 여행이 힘들고 고된 길임이 분명해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어떠한 모습으로든 희망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또 자신과 뜨겁게 해후할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