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은 나에게 조금 낯선 문체의 소설이다. 저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무한한 감동, 또는 전율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중간고사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책을 읽어버렸는데, 책의 중간중간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인상도 받지 못 했다. 나름 문학 작품을 많이 접했고, 작품 감상을 할 줄 안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역시나 아직 내 수용 수준은 한참 멀었나 보다.
먼저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살펴본다면, 작가의 세밀한 묘사 덕분에 머리속에는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겨울에 일본에 가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아름답고 고요한 시골 겨울, 쉬이익 쉬이익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온통 새하얀 설원이 가져다주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생각났다. 그 설원 안에 위치해있는 고즈넉한 시골 여관에서 여행자 시무마라는 게이샤인 고마코와 요코를 만난다. 작품 속에서의시간은 1년, 2년, 3년, 아주 빠르게도 흘러갔다. 때문에 나도 덩달아 속도를 내서 작품을 읽었다.
시무마라와 고마코의 관계는 굉장히 난해하다. '플라토닉'한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육체적 쾌락만을 위한 가벼운 관계는 더욱이 아닌 듯 하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친밀해진다. 시마무라가 무려 1년 간격으로 여관을 방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날 때마다 전혀 어색함 없이 대화를 나눈다. 마치 어릴적 친구와 덤덤한 담화를 나누듯, 또는 마치 영혼이 교제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미 가정이 있는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항상 어느정도의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마무라와 고마코 사이에는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분위기가 감돈다. 무슨 일이든 곧 일어날 듯한 이상한 긴박감과 애틋함이 고마코와 시마무라 사이에 항상 혼재하는데, 이를 구구절절 복잡하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에 읽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느꼈듯이, 무심코 지나치는 감정의 선을 작가는 기막히게 잘 잡아냈다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이것이 문학의 아름다움 아닐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감정들, 순간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감정과 생각을 작가들은 놓치지 않는다. 그 찰나에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역시나, 일본 문학의 대가답다. 이 작가의 관찰력, 예리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책의 결말은 굉장히 뜬금없고 허무맹랑하기까지한 느낌이다. 또 한명의 다른 게이샤인 요코가 불속에서 돌연 죽음을 맞이한다. 요코는 이 책에서 고마코와 대비를 이루며 사무마라, 고마코와의 삼각관계를 형성했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소극적인 나머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그렇게 조그마한 존재감을 가진 요코가 죽으면서 끝나는 이 책의 결말은 도대체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요코의 소극적인 개입 그리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허무한 결말. 그럼에도 부루하고 ,작가의 시적인 표현과 지극히 서정적인 분위기가 조성하는 아름다운 분위기는 감탄, 또 감탄스럽다. 책의 구절들을 다시 곱씹어보니 이제야 소설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간결한 문장만으로도 독자를 감동시키는 그 어려운 일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