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항상 일본소설에서는 일본작가들의 글을 풍기는 분위기가 있다. 내용의 구성자체라던가, 스토리에 대해 고민을 한 것보다는 글 자체를 어떻게 아름답게 쓸까를 고민하는 글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다. 잔잔하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수 없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흘러가다 그냥 그렇게 끝난다. 역사서라던가 연대기가 아니고 이런 식의 글을 정말 읽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개인 수필이라던가 에세이도 그렇게 느끼는 편이라 잘 찾아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남자친구는 나와 완전히 취향이 달라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자기는 그런 책이 좋다고 하던데, 다음에 읽어보고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나오는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 그리고 요코가 병간호 했던 남자 이렇게가 주요인물인 것 같다. 그런데 결국 고마코와 요코간의 관계, 요코가 병간호 했던 남자와 고마코, 요코사이의 관계 어느 것도 알 수 없는 채 소설이 끝나고 만다. 글이 아름다워서 노벨 문학상을 탄 것일까? 여러번 읽으면 소설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장면을 굉장히 세세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본사람이 아니기에 어쩌면 감정이입하며 상상을 하면서 읽기 어려운 것인지 몰라도, 보통 스토리에 집중을 하는 나로써는 그러한 아름다운 묘사에 대해 감동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답답한 소설이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이상한 관계도 그렇고, 나는 게이샤가 그러한 직업인 줄 몰랐다. 무언가 현시대의 일본의 기생느낌이랄까, 기쁨조? 그러한 직업이 여전히 있다니 당황스러웠다. 가정이 있는 시마무라가 매년 찾아와 고마코를 보는 것도 그렇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끌림인냥 이야기하는 모습도 불쾌했다. 끝에서 이제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뉘앙스를 몇 번 풍기며 소설은 끝나지만 결국은 다시 보러 가게 될 것 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마무라 같은 사람이 화자로 나와 그 사람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하고자 하는 그런 류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 시키고, 미화시키고 그런 느낌? 글에도 나오듯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고마코를 보며 자신은 부모님의 재산으로 편하게 살아갈 뿐이고,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에 남들이 쉽게 접하거나, 자신이 쉽게 접하는 것이 싫어서, 그러니까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는게 싫어서 일본 무용이 아닌 보지도 못한 서양 무용에 대해 논평아닌 논평가로 일을 하는 것도 그렇다. 일본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이 어떠한 일탈, 아니면 그 이색적인 느낌을 그리워해 매년 다른 세상을 찾아오듯,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그곳에서 게이샤를 만나다니. 이해할 수 없다. 본인이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인냥‘,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냥‘, 여기서 이렇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끝은 봐야한다! 그래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뭔가 다른게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확실히 책도 문학도 나와 맞고 맞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한 번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고, 앞으로도 한 동안 일본의 소설은 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