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실로 불안하다. 빨간색 표지에 걸맞는 한 움큼의 불안이 끊임없이 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반사적 호기심에 책을 놓지 못했다. 나의 이러한 불안은 책 속 대부분의 내용이 유토피아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교수님들의 집필 성향은 우리가 더 이상 종교적 광신이나 이성만능주의에 영향받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탓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 식량부족,환경문제, 에너지부족, 인류멸종 등등 인류의 역사 이래 끊임없이 다음 세대의 인류에게 떠넘겨왔던 고질적인 문제들은 점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더 이상 신에게 절실히 기도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맹목적인 이성과 과학은 대규모 살육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양 손이 묶인채로 어찌 해야할지 모르는 우리는 그저 부패한 엘리트들 밑에서 무기력하게 불안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성균관대학교의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의 지역적으로 유리에서 비롯된 학문간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2014년 각각 서로의 캠퍼스에서 했던 특강을 엮었다. 이러한 특징은 한 책 속에 다양한 강의들을 담음으로써 학문 스스로가 가지는 학문적 의의 뿐만 아니라 각 과목별 교수님들의 강의 내용과 그 목적을 통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책을 보면 인문학쪽 내용들은 현대사회 속에 공존하는 여러 문제 의식에 대해 소설이나 영화 등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동의을 이끌어냄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자연계열쪽 내용들은 이미 정해진 학설로 정해진 경우가 많아서 어느정도 상식선에서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주로 다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이 둘은 독자가 교수의 주장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는 두 학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시사하며 결국 학문 간 화해와 융복합이 쉽지 않은 길일 것임을 함의한다. 동시에 현재 이렇게 세분화된 대부분의 학문이 모두 고대 아테네의 철학에서 기인했음을 고려할때, 학문간 융복합이란 그저 씌우기 좋은 허울이요, 사실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저 약간의 뚝심과 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은 커녕 밥벌이조차 쉽지 않은 우리가 졸지에 전인류를 관통하는 미지의 불안 속에서 학문간 융복합을 위해 내던져졌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교수님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교수님 짱짱!! 학점 좀 후하게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