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짠 맛만 나지 않는다.
‘소금’과 ‘아버지’의 상관관계
『소금』은 아버지에게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작품이다. 허영심 많은 어머니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희생하는 가장인 아버지. 짧고 굵게 제목으로 쓰인 ‘소금’은 이러한 아버지의 인생을 비유하기 위한 좋은 제재이다. 소금에서는 흔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짠 맛뿐만이 아니라 단 맛이나 쓴 맛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색다른 맛을 결정하는 것은 소금에 포함된 성분인데, 작가가 이를 위해 조사를 굉장히 열심히 한 것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소금의 맛에 대해 꽤 자세하게 묘사하고 설명해주는 부분을 보면 소금의 맛을 인생에 비유한 연결 지점이나 그 발상이 굉장히 흥미롭다.
결국 일반적으로 ‘짠 맛’만 낼 것이라고 생각되는 소금처럼 세상의 아버지들은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을 뿐인 것 같지만, 실은 소금에도 여러 가지 맛이 있듯이 아버지들의 삶에도 각각의 역경과 서글픔과 고난이 깃들어 제각기 조금씩 다른 맛을 내는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금》은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건네는 위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거의 아버지 상과 오늘날의 아버지 상
과거의 아버지들은 종종 역정을 내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숨겼다. 『소금』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거나 과도한 음주를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언제나 강하고 견고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잘못된 권위 행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러한 아버지상은 싸늘한 시선을 받을 뿐이다. 이전의 아버지상이 왜곡되고 잘못되었으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오늘에서야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과거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테면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만연하던 조선시대에 대해 순수하게 오늘날에 성 평등적인 관점만 적용하여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듯이 말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점점 더 나아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다시 말해, 이제 점차 개인의 의사와 가치를 존중해주는 아버지상, 새로이 변화한 아버지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가 없으며, 이전에 가장에게만 부여된 것이라고 생각되던 의무와 부담은 굳이 남성에게만 부담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러한 부담이 부당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마음껏 크게 웃지 못하고 무게를 지켜야만 하는 아버지상은 더 이상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있는 것이다.
내일의 아버지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점차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고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오는 무게와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다 보면 조금 더 이전의 의무에서 자유로운, 단순히 누군가의 부모라는 직함을 넘어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존중받는 아버지상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버지의 부담이 더 이상 아버지만의 부담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 역시 양성 평등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부담 역시 고르게 분배될 때 진정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한적이기만 했던 여성의 역할이 점차 확장하고 있듯이, 과도하게 부여되었다고 여겨지던 남성의 부담 역시 분산될 것이다. 내일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