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허위적인 내용으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게 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당당히 자기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한 철학적인 글을 쓴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자, 예수, 석가모니와
함께 4대 성인으로 불리고, 철학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플라톤의 스승이기도 하다. 우리는 변명이라는 책을 통해서,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와
‘국가에서 믿는 신을 모독한 죄’로 멜레토스, 아나토스, 리콘에 의해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자기자신을 어떻게 변호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 카이레폰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는가’에 대해 신의 대답을 듣고자 했다. 델포이의 무녀를
통해 ‘더 현명한 자는 없다’라는 대답이 왔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당황하며 신의 말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숙고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신은 거짓말을 할 순 없다. 다만 나에게 지혜가 없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찾아 신에게로 가면 신탁이 반증될 것이다’라는
답을 찾아냈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본인보다 현명한 사람을 찾기 위해 유명인들을 찾아 다닌다.
첫째로
소크라테스는 현인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듣고 있는 정치가를 만났다. 그 정치가는 스스로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그 정치인에게 그가 현명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 했으나, 얻은 것은 그 정치인과 그의 지지자들의
적의뿐 이었다. 그 뒤로 차례차례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자들을 만났으나,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쳐 소크라테스를 미워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많은 유명인들의 적의와 명성이 높은 자들이
현명하기 보다는 어리석다는 다소 씁쓸한 결론만을 얻을 수 있었다. 정치가들에 이어 그는 시인들을 만났다. 시에서 아름답고도 정성이 들어있다 여겨지는 구절에 대해 물어도, 시인들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더 훌륭하게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로써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은 그저 소질과 영감으로
시를 쓰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인들까지
만나보았으나 그는 결국 본인보다 현명한 자를 찾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적의와 악의만
키웠을 뿐이다.
그는
위험한 적들을 많이 만듦과 동시에 ‘현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신만이 현명하며,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보잘것없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신탁
내용은 사실 ‘그 자신의 지혜가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같은 자가 가장 현명하다’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떤 죄목으로 고발한 걸까? ‘바로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을 믿음’이라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자 멜레토스와
직접 대화한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에게 손해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묻는다. 멜레토스는 당연한 이치로 없다고 대답한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뒤이어 ‘내가 청년들을 고의로 타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묻는다. 멜레토스는 이 역시 그러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고발자
멜레토스의 자가당착이 드러난다. 탁월한 지혜를 갖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소크라테스가 고의로
다른 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지, 혹은 무지몽매해 타락시킨다는 것도 모르고 타인을 타락시킨다는
것인지-이 경우에는 심지어 법정에 설 수 없다. 법률은 비고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느 쪽이든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어서 신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피리 부는 법은
믿으면서 피리 부는 사람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정령과 신의 힘을 믿으면서 정령이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가 있는가’ 묻는다. 그는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멜레토스의 소장에는 소크라테스가 신이나 정령의 힘을 가르친다고 쓰여 있었다. 멜레토스의 말에 따라 소크라테스가 정령, 신을 믿음이 증명된 것이다. 결국 또 그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모든 고소에
대한 해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이어서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자신은 신이 그들에게 보내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증거로 소득도 보수도 없이 시민들을 위해 시민들이 덕을 쌓기를 돕고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알지 못하면
아는 체 하지 말자.” “내가 봤을 때 덕이 없으면서도 덕을 가진 체 한다고 생각되면 그가 가치 있는
것은 과소평가하고 가치 없는 것은 과대평가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돈에서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서 돈과 다른 좋은 일이 생긴다.” 등의 명언을 쏟아낸다. 그는 또한 말한다. “만약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명하지도 않으면서 현명한 체 해 신탁에 복종하지 않았더라면 기소 당해 마땅하다.” 즉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으며 자신이 당당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단 30표 차로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멜레토스는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자고 주장하고, 그 주장은 받아들여진다. 소크라테스는 그 상황에서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본인에게 부족함이 있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시민들과 재판관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선고된 후에, 소크라테스는 저주인지 예언인지 모를 말을 한다. 죽을
때가 다가온 자에게 온 예언의 힘으로, 그가 죽은 직후, 시민들에게는
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부과한 것 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 닥쳐올 것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무죄 선고를
내린 재판관들은 진실한 재판관인 동시에 본인의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닥쳐온
순간에도 죽음이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허무 상태 또는 영혼의 이동일진데, 만약 어지러운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 같은 상태라면 이는 좋은 것이고, 만약
모든 죽은 자들의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인생을 올바르게 살다 떠난 자들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 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라는 말을 하고 떠난다.
이
글에서 만난 소크라테스는 내 예상과 다소 다른 사람이었다. 가난과 초연한 태도 때문에 꼿꼿한 대나무
같으면서도 겸손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선비 같은 철학자일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는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당당한, 어찌 보면 오만하다고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한 그런 철학자였다. 나라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잠깐 시민들 앞에서 겸손하게 말하며 굽혔을텐데, 그는 목숨을 구걸하기는 커녕 당당하게 행동한다. 시민들에게 자신을 '시민들에게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평소에 자존감이 낮고 내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나로써는 당대 현인이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도 본인만큼
현명한 사람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그가 부럽다.
또한 그가 무지와 과신에 대한 비판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인간이 죽음을 최대 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 알지 못하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확신하게 하는 무지를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소크라테스의 다양한 명언들 중 ‘돈에서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서 돈과 다른 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구절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오늘날의 물질만능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돈이면 다 돼~”라는 말은 이제 결코 웃어넘길 수 있는 농담이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결국 이 조급한
모든 과정이 다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돈을 벌면 과연 내 덕이 쌓이고 내가 행복해질까? 결코 돈이 무언가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현자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가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진짜로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나는 당당함과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싶다. 동시에
그 당당함과 자존감, 자신감의 근원이 되는 진짜 실력, 진짜
현명함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