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앞에 스러져간 생명들.
과거에는 천연두를 마마 혹은 손님이라고 부르면서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굿을 손님굿 혹은 마마굿이라고 했다. 점잖은 단어 뒤에 숨겨진 이면처럼 황석영의 <손님>도 무섭고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소설에서의 손님은 천연두가 아니라 바로 서구에서 들어와 마을의 연대를 파괴시킨 개신교와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손님들은 천연두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고통과 희생을 안겨주고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보이지 않는 것 뒤에서 스러져간 생명들이 가슴 아프다.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의를 떠나 종교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단순히 과학적 측면에서 비판할 것이 아닌 윤리적이고 내면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